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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클럽
처음이자마지막으로그것을본것은20여년전이었다.아마도내가6살때즈음의일이었던것으로기억하는데그기억이너무도생생해서마치어제본일처럼기억하고있다. 크리스마스선물을기대하며양말을걸어놓고잠이들었었다.받게될선물에대한기대때문이었을까거실의괘종시계가새벽2시를알릴때나는마치아침이되어깬듯맑은정신으로잠에서깨어났다.그리고는따스한침대에서내려와양말이걸려있는곳으로걸어가선물이들어가있는지확인하려고했었다. 산타클로스가다녀갔을까하는생각을하면서동생제이드의양말옆에걸린내양말을들여다보다가거실의벽난로에서이상한소리가나는것을듣고는깜짝놀라그쪽을바라보았다. 불씨가꺼져싸늘한기운이감도는거실에홀로서서등이싸늘해지는느낌에놀라벽난로쪽으로다가가던나는놀라고말았다.굴뚝에서부터재가떨어져불씨위로떨어지는것이보였기때문이었다.그뿐만이아니었다.무엇인가육중한것이굴뚝을타고점차내가있는곳으로내려오는듯..
Joseph - 은하 끝의 등대 멀리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저편을 바라보며 남자는 별을 세고 있었다. 초점 없는 흐린 눈에 들어온 흐릿한, 마치 검은 쟁반 위에 뿌려진 설탕 같은 별빛들을 몇 시간째 세고 있었다. 세고 또 세는 건지, 수많은 별을 세다 수를 잊고 다시 세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눈이 조금씩 위 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보아 창 밖의 별을 세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는 자신이 이런 생활에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한 달에 정확히 네 번 그러니까 일 주일에 한번씩 시크릿 가든을 지나 다른 은하로 넘어가는 수송선의 항로 변경을 위해 설치된 항로 유인선 에서 생활한 지 이제 2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사실 남자도 자신이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우주에 항로 유인 시설이 필요하다는 ..
'아....'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뭐랄까 이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일은 마치 비를 흠뻑 맞아 뼛속까지 추위가 스며든 채로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돌아갈 때의 기분과 비슷하다고 나 할까? 항상 경험하는 일이지만 전쟁 중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용병들에게는 안락한 좌석 따위는 제공되지 않았다. 의자라도 있으면 그나마 나았다. 온통 차가운 금속의 컨테이너 안에서 가운데 하나 켜져 있는 불빛에 의지해 벽에 기대어 서있거나 쭈그려 앉아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잠시 서서 '타르/니코친 프리'라고 쓰여져 있는 상자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는 불을 붙였다. '후....'불빛에 담배연기가 흩어지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몽롱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고 하면 좋을까. 컨테이너 안의 악취를 잊기 위해 피운 담배지만 지..
네다섯 평 남짓한 여관방 바닥에는 컵라면이 입을 반 쯤 벌리고 모락모락 김을 내뿜고 있었다. 남자는 방금 샤워를 하고 나왔는지 아직도 물기가 남아 있는 머리를 연신 뒤로 넘기며 반쯤 열린 컵라면 종이를 완전히 뜯어내고는 나무젓가락을 들이 밀었다. TV는 켜져 있었지만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아져 있었고 후루룩하는 소리가 더 크게 방 안에 울렸다.연신 젓가락을 움직여 대던 남자가 컵라면 용기를 들어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나무젓가락을 용기 속에 던지듯 집어넣고는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다.잠시 후 물 내려가는 소리를 꼬리처럼 늘어뜨리고 방으로 나온 남자는 TV 맞은편 벽에 기대어 앉아 리모컨을 들어 소리를 높였다. 14, 15 볼륨 버튼에 맞춰 올라가던 숫자가 18 정도에서 멈추자 남자는 이제 더..
아까 이 산장에 들어설 때 내가 가지고 있는 큰 여행가방을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보던 주인의 모습이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그런 일에 정신을 쓸 만큼 지금은 한가하지 않다. 먼저 큰 여행가방을 눕혀서 침대 밑에 밀어 넣고 같이 가져온 작은 가방에서 물건들을 꺼냈다.세제와 작은 전기톱, 망치, 비닐, 우의 그것들을 꺼내 배낭에 넣고 벽난로 안에 사진이나 서류 같은 종이조각과 옷가지들을 던져 넣고 불을 지폈다. 그리고 그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침대에 앉아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할 일이 많았지만 불타오르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잠시 이렇게 앉아 있고 싶었다.솔직히 말하자면 나 자신도 내가 정신병의 증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가지고 있는 증상들이 정신병이라..
설 연휴가 끝난 다음날이라설까? 책상에 앉아 있는 게 전보다 더 지루하게 느껴졌다. 뭐 새해가 된다는 것이 나의 일상에 끼치는 일이라고 해봤자 몇 년간 사용해 오던 다이어리의 연락처란을 정리하고 메모 페이지를 다 떼어내고 새 것으로 갈아 넣는 것 정도의 일뿐이었다. 새해 인사라는 명목으로 낯선 이름들 옆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어보는 일이 연휴 내내 계속 되다 보면 어느 틈엔가는 이 번호가 도대체 누구의 번호인지, 어디서 적었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는 때가 있다. 물론 나의 이런 어설픈 기억력을 대신하기 위해 전화번호 옆에 꼭 누구인지 하는 - 예를 들자면 고교 동창, 대학교 후배라는 식의 - 간단한 설명을 적어 넣기도 하지만 그나마도 적어 놓지 않은 연락처가 매년 몇 개씩 어디선가 꼭 튀어나온다..
A씨가 왜 옥상에 올라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오늘도 A는 새벽녘이 되서야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O부장을 데리고 술집을 세 군데나 전전하다 겨우 그에게 대리 운전을 붙여 집에 보낸 뒤 정작 자신은 택시를 잡지 못해 한 참을 길바닥에서 서성거리다 이제야 집 근처에 도착한 것이었다. "자기가 스트레스 받는다고 날 끌어대면 내 스트레스는 어떻게 하라고!" A는 택시기사에게는 웅얼거림 쯤으로 들릴 넋두리를 꼬부라진 혀로 겨우 내놓고는 한기를 느꼈는지 몸을 살짝 떨었다. 와이셔츠에 배인 땀이 식으며 등줄기가 서늘했다. O부장의 통통한 몸을 끌고나오느라 했던 고생이 이제는 땀 냄새와 한기가 되어 자신을 괴롭히는구나하고 생각하던 A는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는지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마냥 눈을 가늘게 뜨고 미간을 찌..
융해(融解) 병원 복도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저번에 왔을 때는 진찰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맞은편의 소아과 진찰실 앞 나지막한 플라스틱 미끄럼틀에도 어린애 하나 보이지 않는 것이 괜스레 불안하게 남자의 마음을 눌러온다. 점심시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기 때문일 거라고 남자는 스스로 답을 찾아내고는 구두 굽을 들었다가 소리 나게 바닥을 두 번 두들겼다. 예상보단 울림이 좋은 소리가 병원 복도에 꽤 큰소리를 내며 퍼지자 다시 한 번 더 소리를 낸다. 마치 군대 시절 점호 시간에 자신의 앞을 지나치며 이 병장이 전투화로 내던 소리 같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잔뜩 긴장한 상태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가슴을 울리는 것마저도 비슷했다. 그렇게 구두로 장난을 ..
나는 그 때, 내 회사 동료의 집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업무시간이었는데도 회사를 빠져 나와 그의 집으로 갔던 이유는 지난 번 맡겼다 받지 못한 서류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것을 과장-마치 부하직원의 흠을 잡아내느라 근무하는 것 같은-이 알아챘을 때 써먹을 핑계거리였을 뿐 그것이 실제 이유는 아니었다.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 깊은 대화를 나눠보지도 않았고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지만 마주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꽤 긴밀한 친밀감과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그의 얼굴이 며칠째 보이지 않아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는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는 얼굴을 마주치기도 꺼리는 - 마치 대인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람 같은 - 사람이었기에 그에 대한 나의 걱정은 좀 특별했다.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