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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습작/엽편

그의 두통약

달부장 2003. 10. 8.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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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때, 내 회사 동료의 집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업무시간이었는데도 회사를 빠져 나와 그의 집으로 갔던 이유는 지난 번 맡겼다 받지 못한 서류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것을 과장-마치 부하직원의 흠을 잡아내느라 근무하는 것 같은-이 알아챘을 때 써먹을 핑계거리였을 뿐 그것이 실제 이유는 아니었다.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 깊은 대화를 나눠보지도 않았고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지만 마주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꽤 긴밀한 친밀감과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그의 얼굴이 며칠째 보이지 않아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는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는 얼굴을 마주치기도 꺼리는 - 마치 대인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람 같은 - 사람이었기에 그에 대한 나의 걱정은 좀 특별했다. 사실 그에게 존재감이란 것을 느끼는 사람은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람들 중 나 하나 뿐 일 것이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회사에 들어왔는지 조차 신기할 정도로 그는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꺼렸다. 짧은 머리에 강인해 보이는 진한 턱선 과는 대조적으로 핏기 하나 보이지 않는 그의 얼굴은 강하면서도 나약해 보이는 매우 독특한 얼굴이었다. 굳게 다문 입술사이로 허튼소리 같은 건 내뱉을 것 같지 않은 그의 눈빛을 본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선뜻 말을 건네지 못할 터지만, 난 그가 출근 할 때마다 챙겨먹는 그 조그만 알약 덕분에 이야기를 건네게 되었었다. 마치 잊어버리면 큰일이라도 날 듯 두 손으로 받쳐 든 하얀 알약을 물 한모금과 삼키고 한숨을 내쉬는 그의 얼굴은 신기하다고 할까 아니면 재밌다고 할까 아무튼 그때까지 그가 풍기던 분위기와는 사뭍 다른 그런 것이었다. 저 사람이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난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고는 맞은 편 책상에 앉은 그에게 말했었다.
“무슨 약인데 그렇게 두 손으로 받아들고 먹는 거예요?” 

미소 지은 내 얼굴이 자신을 비웃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내 물음을 받은 그의 얼굴이 굳어가자 난 얼른 미소를 지우고 다시 말했다. 

“매일 아침마다 먹는 것 같아서 물어보는 거예요?”

“두통약입니다.”

짧은 대답이었다. 이야기 같은 건 나누고 싶지 않다는 듯 한 그 표정을 보고 난 왠지 그에게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꽉 닫힌 너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겠다는 웃기지도 않는 도전이 먹혀들었는지 그 이후로 우리 둘은 농담정도는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나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 후로도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소통이 없었다. 업무에 관련된 대화 이외에는 하루 종일 입을 열지 않았고 가끔 회사 사람들과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는 때에도 그는 항상 빠졌다. 물론 난 그때마다 그에게 같이 가기를 권유했지만 그는 단호한 어조로 싫다고 말한 뒤에 일어서 사라지곤 했다.

사실 난 그가 회사에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 작은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와 처음으로 술을 마신 다음날 그가 결근을 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의 두통이 싫어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그를 억지로 술집에 끌고 간 것을 지금은 꽤 후회하고 있었다. 물론 술 한잔마신 것이 그의 결근과 크게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 역시 처음에는 가지 않겠다고 했었지만 술집에 들어서서는 보이지 않던 미소까지 보였던 것이 생각나자 나는 괜한 걱정이라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창백한 얼굴이 술기운 덕분인지 조금 달아올라 있던 그의 얼굴이 떠올라 나는 작게 코웃음을 치고는 턱을 만지작거렸다.

정지 신호를 받고 신호등 앞에 대기 하고 있는 동안 나는 와이셔츠 윗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그의 집 주소가 적힌 쪽지를 꺼냈다. 가본 적은 없었지만 매일 출근할 때 마다 지나는 곳이었기 때문에 아파트 단지 까지 가는데 는 어렵지 않았지만 종이를 꺼낼 때 손의 땀이 묻었는지 약간 번진 동 호수 때문에 조금 헤맸다. 덕분에 좋지 않은 기억력에 매달리다 할 수 없이 회사로 다시 전화해서 동료에게 주소록을 뒤져 달라고 한 뒤에야 나는 그의 아파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가한 오후의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까지 가는 동안 나는 내내 엘리베이터 벽에 붙은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굳어 있는 게 나도 모르게 그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다시 한번 호수를 확인한 뒤 나는 그이 아파트로 향했다. 그리고 그가 산다는 아파트 문 앞에 거의 다다라서 난 긴장해서 입안의 침을 꿀꺽 삼켰다.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문 앞 가득 신문더미가 가득 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신문더미를 보고 나는 놀란 얼굴로 벨을 눌렀다. 한번, 두 번, 세 번 마치 있기를 바라기라도 하는 듯 눌러 댔지만 역시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 뒤로도 몇 번인가 더 기계적으로 나는 계속 벨을 눌렀지만 열린 것은 그의 아파트 문이 아닌 옆집의 문이었다. 신기한 것이라도 보는 듯 아파트 문 사이로 고개를 내민 남자아이 하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잠시 후 그 위로 아이의 엄마인 듯한 여자가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그 집에 아무도 없는 것 같던데요. 안 들어 온지 며칠 된 것 같아요.”

더 이상 벨을 눌러 자신의 조용한 오후를 방해하지 말라는 듯 여자는 이렇게 말하고는 아이와 함께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이 사라지고 나자 내 눈은 바닥에 흐트러진 신문위로 다시 향했다. 그 날 무슨 일이라도 당한 건가? 순간 머릿속에서 갖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몸서리쳐지게 끔찍한 몇 개의 상상이 머릿속을 헤집고 난 뒤 나는 아직도 현관 벨에 닿아 있는 손가락을 포기한 듯 천천히 떼고는 뒤로 물러섰다.

‘집에도 없다면 어디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문득 저 멀리 왕복 4차선 도로를 쏜살같이 지나가는 트럭의 시끄러운 소음에 묻혀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분명 그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멀리서 들려오는 듯 작고 가냘팠다. 난 다시 귀를 기울이며 그 소리가 다시 들려오기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그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신호라도 되는 듯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목을 가다듬어 그를 부르려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파트 현관 손잡이를 돌렸다. 잠겨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문이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슬그머니 움직이다 바닥에 깔린 신문더미에 걸려 더 열리지 않자 나는 휴 하는 한숨과 함께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헛걸음을 하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웠던 것일까 아니면 그가 집에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던 것일까 내 한숨의 의미는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난 쭈그리고 앉아 문이 열리는 것을 막고 있는 바닥의 신문과 우편물들을 주섬주섬 챙겨들었다. 문틈 사이에 끼어 있는 신문을 빼려다 잘못해 위에 얹혀 있던 우편물들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꽤 시간이 지난 뒤에야 나는 문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나 이정민이에요. 회사에 계속 안 나와서 걱정돼서 왔어요.”

검은색 커튼 때문에 남향의 창으로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 방안에 대고 내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산지 얼마 안돼 아직도 발에 통증을 주는 새 구두를 벋고 거실로 들어서 한쪽에 신문과 우편물 들을 내려놓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뒷꿈치에 아릿한 통증이 조금 사라질 즈음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찾아와 주시다니 고맙네요. 좀 아파서 그랬어요. 모래면 나갈 수 있을 테니까 걱정 말고 돌아가세요.”

거실 오른쪽의 문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난 고개를 돌려 그 곳을 바라보았다. 아픈 사람을 찾아와 얼굴도 보지 않고 돌아가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난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거실을 가로 질러 문 앞에 다가가 노크를 하고 말했다.

“어디가 아픈 거예요?”

순간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방 너머에서 들리는 것 같더니 문손잡이를 잡는 듯했다. 하지만 이미 문은 열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방안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실보다 더 어둡긴 했지만 사물은 분별할 수 있을 정도의 방안은 문이 열리자 그 어두운 모습과는 달리 기분 좋게 하는 산뜻한 향내가 풍겨왔다. 그리고 잠시 후 방 문 앞에 앉아있는 그의 모습이 들어왔다.

“머리에 그건 뭐예요?”

이렇게 말한 뒤 이제 어둠에 완전히 적응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방바닥에 흐트러진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이었다. 어떤 것은 잘린 지 오래 된 듯 시들어 있고 또 다른 것은 방금 잘린 듯 싱싱해 보였다. 한 쪽에 수북한 나뭇가지들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이 그의 왼손으로 움직였다. 내 시선이 움직이는 것을 눈치 챈 듯 그의 왼손에서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무엇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작은 가지치기 가위였다. 이 방안에서 화분에 심은 나무라도 손질했나 하는 생각에 그에게 물으려고 고개를 드는데 머리에 커다란 샤워 타월을 터번모양으로 높게 감은 채 그 역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퀭하게 들어간 채 날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한 10년은 더 늙어보였다. 내 물음에 그는 머리를 감고 있는 타월이 풀리기라도 하는지 한쪽 끝은 꽉 붙잡고 천천히 일어서더니 말했다.

“두통 때문이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그가 말했지만 난 그의 머리에 감긴 타월을 바라보느라 그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머리위로 30센티미터나 솟아있는 그 타월은 정말 이상해보였다. 타월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내 시선을 눈치 챘는지 그가 머리의 타월을 감추려 하는 듯 했지만 너무 커서 감출수가 없었다. 바닥에 흐트러진 나뭇가지 보다 그의 머리위에 두른 타월이 이상해서 묻고 싶었지만 나는 그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두통이 그렇게 심하면 병원에 같이 가보죠?”

내가 겨우 눈을 돌리고 이렇게 말하자 그가 방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약을 먹으면 돼요. 지금 약이 오길 기다리고 있는 중…….”

내 옆을 살짝 지나 방 밖에 나와 내가 가지고 들어온 우편물을 훑어보던 그가 갑자기 말을 끊더니 떨리는 손으로 작은 봉투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그 봉투를 뜯어 안에 들어있는 종이를 꺼내 읽더니 뭐라 할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내 멱살을 부여잡고는 소리쳤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내가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순간 그의 머리에 감겨 있는 타월이 풀리며 감춰져 있던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그게...”

어두웠지만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나무! 그것은 나무였다. 마치 머리위에 분재를 얹어 놓은 것처럼 작은 나무 한그루가 그의 머리위에 얹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머리의 타월이 풀린 것을 느낀 그가 내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풀어 머리를 감춰보려고 했지만 그의 작은 손바닥이 그 커다란 것을 감추기에는 무리였다.

내가 놀라 입을 벌린 채 그의 머리를 바라보자 그는 포기 한 듯 내 멱살을 잡았던 손을 풀고 힘없는 걸음걸이로 거실의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말했다.

“이제 죽는 일만 남았군.”

마치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의 목소리가 어둔 방안에 울렸다.

“도대체 그 머리에 솟아 있는 건 뭐죠?”

내가 눈을 비비며 묻자 그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머릿속에 뿌리를 뻗었어. 유전인지 뭔지 모르지만 내 아버지도 형님도 이 나무가 머리에서 자라는 바람에 돌아가셨지. 이 놈이 두개골을 뚫고 뇌 속에 뿌리를 뻗어 자라는 바람에 그 끔찍한 두통에 시달리면서 말야. 난 아직도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해 형과 내가 보고 있는 자리에서 마지막 비명과 함께 돌아 가셨지. 그리고 이 빌어먹을 나무엔 꽃이 피었어. 당신도 맡았겠지. 내 방안에서 풍기는 향긋한 냄새. 그 냄새는 죽음의 냄새야. 죽음을 알리는 냄새. 당신과 술을 마셨던 그 날 약병만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며칠 더 살수 있었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할 수 없지.”

난 그의 말을 이해 할 수 없어 그가 방금 전 떨어뜨린 봉투안의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 안에는 작은 글씨로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주문자께서 주문한 약품은 금번 수입금지 조치로 인해 판매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양해 바랍니다.”

“내가 먹던 약. 그건 두통약이 아니라 식물 성장 억제제야. 쉽게 말하면 농약이라고. 특별히 회사에 주문해야 받을 수 있는 정제로 만든 것이지. 내 머릿속에 뿌리를 박은 이놈의 성장을 늦춰주는…….”

그 말과 함께 그가 머리를 자신의 머리위의 나무를 쥐어 잡더니 소리쳤다.

“이 놈이 내 머릿속을 파 헤집는 바람에 내 머릿속이 얼마나 아픈지 당신은 상상도 할 수 없을걸...”

겨우 겨우 쥐어짜듯 이렇게 말한 그는 고통이 사라졌는지 힘이 쭉 빠진 채 소파에 앉아 나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 고통을 벋어날 수 있겠군. 잘 봐 두라고 이제 곧 꽃이 피어날 테니까”

그게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난 온몸이 굳어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그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서서히 눈을 감던 그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너무 고통스러워 목으로 나오지 않는 그 비명을 마지막으로 그의 두 손에 털썩 아래로 떨어졌다. 죽은 건가? 정말 죽은 건가? 난 용기를 내어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다가 갈수록 느껴지는 진한 향기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의 등 뒤에 있는 검은 커튼을 살짝 걷어내자 그의 머리위에 푸른색의 꽃이 피어있는 것이 보였다. 너무도 생생한 푸른색이 그 진한 향기와 함께 금방이라도 날 쓰러뜨릴 것 같았다.

난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 그 때는 회사에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혹 경찰이 나를 찾아오면 어쩌지 하는 생각같은건 나지 않았다. 그 꽃 향기에 취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의 죽음에 취했던 것인지 나는 몽롱한 정신으로 그 집을 빠져 나왔다. 괴상한 꿈이라도 꾼 기분이 들었지만 그건 내 바람일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도 그 두통이 찾아왔다. 그가 상상할 수도 없을 거라던 그 두통이 내게 찾아온 것이다. 작은 핀이 머릿속을 지나다니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왜 일까? 내가 맡았던 그 꽃의 향기 때문일까. 왠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보통의 두통약으로는 사라지지 않는 그 두통을 막기 위해선 그가 기다리던 그 약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 그 꽃의 향기를 맡으며 사라지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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