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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습작

쓰던 물건을 완벽하게 버리는 방법

달부장 2005. 1. 2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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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이 산장에 들어설 때 내가 가지고 있는 큰 여행가방을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보던 주인의 모습이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그런 일에 정신을 쓸 만큼 지금은 한가하지 않다. 먼저 큰 여행가방을 눕혀서 침대 밑에 밀어 넣고 같이 가져온 작은 가방에서 물건들을 꺼냈다.

세제와 작은 전기톱, 망치, 비닐, 우의 그것들을 꺼내 배낭에 넣고 벽난로 안에 사진이나 서류 같은 종이조각과 옷가지들을 던져 넣고 불을 지폈다. 그리고 그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침대에 앉아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할 일이 많았지만 불타오르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잠시 이렇게 앉아 있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자신도 내가 정신병의 증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가지고 있는 증상들이 정신병이라고 해도 그러한 증상들이 내가 살아가는데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정신병원에 찾아가서 진찰 받는 일을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실제로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의처증이나 의부증이 정신병에서는 불치병에 들어간다는 말을 방송에서 듣고 난 이후엔 정말 별 증상 아니라고 스스로 진단을 내리고 말았다.

결벽증이라고 하면 될까. 예전 아버지가 자신이 쓰던 물건을 버리거나 자신의 수첩을 버릴 때의 모습을 보아서 일까. 아니면 정말 부전자전이란 말대로 아버지의 습성을 그대로 물려받아서 일까. 나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내가 가지고 있던 물건을 버릴 때 완벽하게 부셔버리고 난 뒤에 버리고는 한다. 종이라면 완전히 찢어버리고 가전제품이라면 그 부품 하나 하나를 망치로 때려 부셔버리거나 분해하는... 매우 파괴적인... 이런 습성 때문에 가끔 내가 내 책상을 정리하거나 수첩을 정리하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는 집사람은 그렇게 할 필요까지  있느냐며 한마디 거들곤 한다.

의미 없는 버릇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이런 습성. 나의 의식세계 깊숙이 자리잡은 강력한 소유욕이 이런 습성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을까. 그렇다. 그럴 것이다. 내가 가진 것 아니면 내가 가졌던 것을 다시는 다른 사람들이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나 자신의 소유욕을 소유물의 종말까지 채우려는 욕구. 내가 쓰던 물건이 말끔하게 고쳐져 다른 사람의 손에 들려 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들. 아마도 이런 생각들 때문에 나는 내가 손때가 탄 물건들을 쉽게 마음 편히 버리지 못하는 것일 것이다. 혹 부셔버리지 못하는 물건이라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도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에 버리고 마는 습성...이런 습성이 가끔 나 자신을 무섭게 할 때도 있다.

사실 난 지금까지 내가 원한 것을 얻지 못한 적이 없었다. 너무 갖기 어려운 것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가지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원한 모든 것을 가져왔다. 한 번도 실패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일까 내가 원하던 것들을 하나 하나 손에 얻을 때마다 그러한 소유욕은 점점 더 강해졌다. 딱 한번 그러한 나의 소유욕을 채우지 못할 뻔한 일이 있기는 했다. 지금의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 난 수많은 밤을 괴로워했다. 그래 그건 지금 생각해보면 사랑이라기 보다는 소유욕이라는 편이 강했다. 마치 그녀에게 잠겨 그녀에게 남자 친구가 있음을 알고 있었으면 서도 나는 그녀를 차지하고 말았다. 결혼식장에서 그녀의 손을 장인에게서 넘겨받을 때 난 이제 내 사랑이 완성되는 구나 하는 생각보다는 드디어 그녀를 손에 넣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어쨌든 그런 그녀가 나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뭐라고 하더라... 아 ! 그래 숨을 쉴 수가 없다고 했다. 나와 같이는 숨막혀 살수가 없노라고 소리치며 그녀는 한 달 전 친정 집으로 가버렸다. 너무 오래 사용한 물건이라 처음에는 다시 그녀를 데려오려고 장인과 장모를 만나보기도 했지만 그녀가 뭐라고 했는지 몰라도 그녀를 만나지도 못하게 집 앞에서부터 막았다. 아이를 유산하고 나서도 그녀는 이렇게 친정 집에서 며칠을 쉬었었다.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던 모습이 떠올랐다. 임신했을 때도 평소와 다름없이 그녀는 우울했다. 원래 임신하면 우울증에 빠진다고 하지만 결혼 후 웃음이 없던 그녀의 얼굴은 더욱더 어두워졌고 결국 내가 야근으로 집에 들어오지 못한 그 날밤 계단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때처럼 며칠 쉬면 집에 돌아오겠지. 하지만 그녀는 한 달이 다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혼 서류만을 보내왔다. 정이 들었었는데 ... 이제 버릴 때가 된 건가... 스스로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자의건 타의건 물건을 버릴 때가 된 것은 확실했다. 버려야 할 때를 알았을 때는 망설여서는 안 된다. 나중에 다 부셔 버린 후 괜히 부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괜한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얼른 버려서 머리 속에서 지워 버려야 한다. 처음 버려보는 물건이기 때문에 방법을 선택하는데 조금은 고민스러웠는데 결국 대학교때 들었던 방법을 생각해냈다. 골격 표본을 만들기 위해 큰솥에 세제를 같이 넣고 삶으면 살은 단백질이라 세제에 의해서 다 녹아버리고 뼈만 남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큰솥은 구하기 힘드니까 작게 잘라서 삶으면 되겠군... 삶기 힘든 건 깊숙한 산에다 버리고...

그 때 침대 밑에 밀어 넣어둔 가방에서 끙끙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취약 효과가 다 풀렸나 보군. 웅크린 채로 가방 안에 있자면 갑갑하겠지. 

나는 발로 툭하고 가방을 가볍게 찼다. 이러면 조용해지겠지...잠시 정말 끙끙거리는 소리가 사라졌다. 나인지 알아챘나 보군 그녀라면 내 성격을 잘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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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가진 어두운 분위기는 좋아하지만 초기라 그런지 이야기를 끌어간다거나 주제가 약합니다.

(지금도 머 크게 좋아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서 언젠가 제대로 틀을 짜서 손을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글 중 하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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