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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념과 공상

편지를 쓴다는 것.

달부장 2005. 8. 7.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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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쓴다는 것.

사실 나는 군대에 있을 때 빼고는 편지를 썼던 기억이 별로 없다. 군대 시절에 썼던 편지를 빼고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성적표에 넣기 위해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부모님께 썼던 편지가 고작인 것을 보면 내가 평생 쓴 편지 중 90퍼센트 이상은 군대에서 쓴 것 같다.
부모님, 동생, 친구들, 선후배들,그리고 펜팔들 대충의 기억으로는 약 300통 정도는 쓴 것 같은데 내가 그 많은 편지들에 대체 무슨 이야기를 적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들 그렇겠지만 군대에서는 힘든 훈련보다 가족과 친구들로 부터 떨어져 있다는 외로움과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가 천천히 희석되어 가는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이 사람을 더 괴롭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나에게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은 그런 외로움으로 부터의 탈출구였고 나 라는 존재를 확인 받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그 시절 무슨 이야기들을 편지에 적었는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분명 서툴고 유치한 글들이겠지만 괴로움 속에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고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확인 할 방법이 없기에 더욱 궁금한지 모르겠다.



그 대신 내가 받은 편지들을 다시 꺼내 보기로 했다. 아들을 군대 보내고 걱정하시는 어머니의 편지와 나에게 고민을 털어 놓으며 휴가날짜를 맞춰 꼭 만나자는 친구의 편지, 또 동아리에 새로 들어온 후배의 이야기나 학교 이야기를 전해 주는 선후배들의 편지 그리고 만나본 적 없는 펜팔친구들의 편지를 읽고 있으니 옛 생각에 부끄럽기고 하고 나에게 편지를 보내준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단정하고 깔끔한 달필이건 휘갈겨 써서 가끔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악필이건 상관없이 그들이 내게 보내준 정이 묻어나와 괜시리 눈물이라도 흘릴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 그 때에도 그들에게 고마워하며 편지를 보냈을 테지만 왠지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마음과는 또 다를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번기회에 옛생각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편지를 써 볼까 하고 종이를 앞에 두고 앉았는데 왠일인지 예전처럼 긴 편지를 쓸 수가 없었다.
이 무더운 날씨에 혹시 더위는 먹지 않았는지, 괜한 감기는 걸리지 않았는지 물어보는 것이 고작이고 그 외에는 더 쓸말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전화나 문자메시지에 너무 익숙해져서 인지 아니면 그 동안 연락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친구들과 관심사가 달라졌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결국에는 종이를 다시 치워 버리고 대신 담배만 한 대 피워 물고 말았다.
군대에서야 확실히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단이 전화 아니면 편지였기 때문에 -부대에 한 대 밖에 없던 공중전화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중대별로 시간을 나누어 써야 했기 때문에 쓸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들에게 쓸 말이 많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편지를 쓰지 않은 것이 오래 되어서 그런다는 생각등 여러가지 생각들이 교차한다. 또 어쩌면 전화나 문자메시지, 메신저 보다 훨씬 내 마음을 드러내는 편지가 부담스러워져서 일거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잠시 중단한 상태지만 언젠가 그들에게 편지를 쓰고 말 것이라고 다짐해본다.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한 내 편지를반가운 얼굴로 읽어주는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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