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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습작

잠자는 숲속의 미녀

달부장 2005. 2. 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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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린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꽤 오랜 시간동안 그녀가 자각하고 있던 살아있다는 감각과는 다른, 육체적인 생존이 아닌 정신적 부활 그것은 마치 얼어붙어 있던 수도관이 조금씩 녹으면서 그 속으로 물이 흐르기 시작하며 막혀 있는 관을 넓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가 자신이 그 동안 - 얼마인지도 알 수 없는 시간이었다 ― 꿈조차도 꾸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한 것이 그녀의 뇌 속 길고 복잡하게 뻗은 모세 혈관사이로 체온을 가진 혈액이 흐르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한 생각 이었다. 왜 자신이 꿈조차 꾸지 않았는지 어째서 꿈도 꾸지 않을 정도로 깊은 밤에 빠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이전의 기억은 ……. 그것 역시 희미하기만 했고 단지 굉장히 고통스러웠던 기억만 생각났다. 그녀의 온몸이 마치 자연발화라도 하듯이 흡사 그녀가 종이를 건드리면 그 종이가 금방 화르륵하고 불길에 휩싸일 것처럼 강렬한 열이 그녀를 휘감았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자신의 몸이 왜 그렇게 불타오르는 듯 열병에 시달리는지 알 수 없었다. 어째서지 이렇게 열이 계속 되다가는 뇌세포까지 파괴되어버릴지 모르는데...... 그녀는 이제 완전히 녹아 자신의 조각 조각난 단편적인 기억들을 하나,둘 떠올리고 정신 과 이성의 흐름이 예전처럼 원활해지는 것을 느끼며 자신이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생각을 떠올렸다. 

‘내 이름이 뭐지. 에린... 에린 이었나.’

이름까지도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에린, 아마도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다. 그때 그녀의 몸 이곳저곳에서 뭔가 작은 바늘이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고 그러한 고통은 뒤이어 추위로 바뀌었다. 추웠다. 그 추위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에린은 눈을 떠보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눈꺼풀이 그렇게 무겁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얼마동안 그녀는 그렇게 눈을 뜨는데 온 정신을 쏟느라 주위에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눈치 챘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단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엄청난 추위가 그녀를 둘러싸고 있을 뿐이었다. ‘죽은 건가’ 순간 그녀는 그런 생각을 했으나 그 생각은 곧 지워져 버렸다. 조금씩 추위가 가시며 그녀의 몸에서 감각이 살아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실랑이 하여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녀가 가진 상식으로는 B급 공포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말하자면 영화 속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며 살인을 일삼는 괴물이었다. 그녀는 그 추악한 구겨진 얼굴의 괴물들이 자신의 다리 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과 함께 자신의 몸에 아무것도 걸쳐져 있지 않다는 것을 눈치 챘다. 분명 이럴 때 그녀는 까악 하고 TV에서나 들을 듯한 찢어지는 목소리로 비명을 질러야 마땅했지만 그녀는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녀의 턱이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그녀가 곧 자신이 이렇게 애타하며 눈을 뜨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꿈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힘들게 떴던 눈을 다시 감아 버렸다.

‘꿈이야. 다시 자고 일어나면 현실이겠지. 아마 그럴 거야.!’

그녀가 이렇게 자신을 다독이며 다시 잠에 빠져드는 동안 세 명의 우르크스 인들은 알몸의 에린을 내려다보며 그 구겨진 얼굴로 흡사 우는 것처럼 보이는 음흉한 미소를 흘렸다.

"이게 인간의 여자인가.?"

그 중 하나가 에린을 가리키며 말하자 옆의 키가 작은 우르크스인 하나가 대답했다.

"왜 리릭. 이 종 여자의 생식기를 바라보고 있으니까 뭔가 땡기나 보지?"

리릭이라 불린 우르크스인은 방금 전에 대답한 키작은 우르크스인의 말을 듣고는 웃기다 는 듯이 끼끽하는 소리를 냈다.

"먹을 것을 보고 성욕을 느끼는건 당연한거야. 우리에겐 성욕이 우선되긴 하지만!"

맞은편의 다른 둘보다 몸이 뚱뚱한 우르크스인 하나가 얼른 말하자 다른 두 명이 마치 콘크리트 바닥에 금속이 갈리는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꽤나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인간의 여자랑 자는 거 말이야. 이종의 생물의 생식기를 탐닉하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을 것 같은데..."

리릭이 이렇게 이야기 하자 키가 작은 우르크스인이 말했다.

"리릭 다른 때 같으면 네가 이 인간 여자를 데리고 무슨 짓을 하던지 아무 상관도 하지 않았겠지만 이건 마지막 남은 하나야. 오늘 주인의 저녁 식에 쓸 재료니까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걸. 행여 음식에서 너의 지저분한 분비물 냄새가 흘러나오면 우리 모두 당장 주인의 저녁 식탁에 이 것 대신 올라갈 테니까."

키 작은 우르크스인의 말이 끝나자 뚱뚱한 우르크스인이 겁이라도 먹은 듯이 몸을 떨었다. 아마도 자신이 주인의 저녁식탁에 올라가는 일을 상상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리릭은 키 작은 우르크스인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겁쟁이라고 무시하듯 리릭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키 작은 우르크스인을 외면했다가 에린의 다리를 한번 만져보고는 말했다.

"주인은 오늘 어떻게 요리하라고 했지?, 혹시 또 저번처럼 살아있느 챌 우걱우걱 씹겠다는 건 아니겠지?"

리릭의 물음에 뚱뚱한 우르크스인이 말했다.

"아냐 그때 뼈가 많다고 불평하시던데 오늘은 얇게 저미라고 하는 것 같던데"

"그럼 그 혐오스러운 붉은 피를 봐야한단말야. 꽤나 많이 흐를 텐데."

리릭이 이렇게 대꾸하자 키 작은 우르크스인이 나서며 말했다. 

"원심분리기에 넣으면 그 붉은 피를 보지 않아도 될 거야. 그전에 머리나 손 같은 부분은 잘라내야 할 테지만."

키 작은 우르크스인의 말에 리릭의 얼굴이 금새 밝아졌다. 아마도 키 작은 우르크스인이 방법이 상당히 맘에 든 모양이었다.

"좋아 너희들은 가서 원심 분리기안을 청소해. 꽤나 더러울 꺼야 그동안 쓰지 않았으니. 나는 이놈을 원심분리기에 넣기 좋도록 다듬어 놓고 있을 테니까."

"좋아 리릭 . 하지만 목이나 팔목 자를 때 조심하라고 피가 상당히 많이 뿜어져 나오니까"

"릭탄 걱정 말고 가서 청소나 해"

리릭의 말에 두 명의 우르크스인들이 조리실 밖으로 나가자. 리릭은 철제 도마위에 놓여져 있는 에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녀석들이 청소를 마치려면 꽤 시간이 걸리겠지?"

리릭은 에린의 다리 사이를 바라보았다. 마치 뭔가를 가리려는 듯 자라있는 털을 한번 만져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과는 다른 이종의 생물체와 교미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꽤나 흥분되는 일이었으며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의구심 또한 들었다. 리릭은 자신의 손을 천천히 가져갔다. 그의 가슴 양쪽에 달려 있는 두개의 심장이 턱 터턱 하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에린은 잠에 빠져들었다가 어디선가 문을 닫는 소리를 듣고는 잠이 깨고 말았다. 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안도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상쾌한 아침의 블랙커피를 상상하며 눈을 떴을 때 그녀가 있는 공간은 그녀가 잠들기 전과 다름없는 공간이었고 다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괴물들이 셋에서 하나로 줄어 있다는 것과 그 남은 하나가 자신의 은밀한 부분에 손으로 보이는 것을 들이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정말 꺄악하고 소리라도 지르려고 했으나 순간 그녀가 느껴보지 못한 기분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것은 연약한 여자로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 그 괴물의 몸이라도 뚫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왜 이런 생각이 나는 거지. 그녀는 손을 움직여 점점 다가오는 괴물의 손을 치워버리려고 했으나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쩌지 어쩌면 좋지. 아무 것도 변하는 것은 없었으나 뭔가 빨리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금방 오줌이라도 쌀 것처럼 초조해졌다. 전이라면 분명 그녀는 이런 초조한 순간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까 두려워했을테지만 지금의 그녀는 몸이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 초조 하고 가슴 조리는 순간에 끝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뭔가 자신이 지금껏 느끼지 못한 것이 초조함이 부풀어 올라 그녀를 집어 삼킬 정도로 커져버렸을 때 그 뒤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꿈틀거리며 초조함을 집어삼켜 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저 괴물의 몸을 뚫어 버리고 싶다는 그녀가 이전에는 하지 않았을 법한 생각과 더불어 그녀의 몸에 알지 못한 힘 같은 것을 불어 넣어 주는 듯했고 에린은 그런 연기처럼 몽롱한 기분을 즐기며 이런 느낌이 혹 그녀의 본능은 아닐까 생각했다.

리릭은 이 작고 하얀 여자라고 불리는 생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주위를 살피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종 생물에 대한 리릭의 호기심이 문제였다. 리릭은 이 인간이 깨어나 있다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고려하지 않았으며 또한 이 조그만 인간이 일어나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자만하고 있었다. 손이라도 묶어 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는 그것조차 하지 않았고 결국 그런 그의 도를 넘은 호기심과 자만이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손끝도 움직이지 못하던 에린이 마치 스프링이라도 튀어 오르듯 상체를 세워 순식간에 그녀의 가늘고 하얀 엄지손가락으로 리릭의 딱딱하고 강인해보이는 신체중 가장 약해보이는 투명한 눈을 꿰뚫어 버린 것이었다. 리릭은 손간 눈에서 전해져 오는 통증을 목으로 토해내기도 전에 그의 목에 뭔가 차가운 것이 와서 박히는 것을 느꼈고 그것이 끝이었다. 에린의 입이 리릭의 목을 깊이 깨물어 짓이기고 있었고 그녀의 입 사이로는 리릭의 미지근한 검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이 처한 위기에 대한 해결을 찾지 못하고 초조해하던 그녀가 보인 이 잔혹하고 빠른 공격은 매우 치명적이었다. 에린의 두 배에 달하는 리릭을 한번에 쓰러뜨린 것을 보면 분명했다. 에린은 그 괴물이 힘없이 주저 않자 물었던 목을 놓고는 자신의 입 주변에 묻은 검은 피를 손등으로 닦아 냈다. 긴장과 초조가 풀린 때문인지 자신의 몸이 생각보다 잘 움직이는 것 같았다. 에린의 입은 마치 검은 먹물이라도 마신 것처럼 지저분했고 손등으로는 제대로 닦이지도 않았다. 에린은 계속 입주변을 닦아 보았지만 생각만큼 되지 않자 더러운 괴물의 목을 깨물었다는 불쾌감에 으 하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리릭의 호기심이 에린에게 전염되기라도 한 것이었을까 리릭이 흘린 검은 피를 바라보자 그녀의 내부에서 뭔가 강렬한 욕구가 가슴 전체를 울리는 것을 느꼈다. 호기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존재…….자신의 입에 아직도 남아있는 검은 피의 떨떠름한 맛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난 것도 바로 이때였다. 망설일 것도 없이 에린은 집게손가락을 세워 싱크대 위에 묻어 있는 검은 피를 찍어 맛보았다. 그리고 퉤퉤거리며 자신이 왜 이런 것을 맛보고 싶었을까하고 생각했다. 그녀도 이해할수 없었지만 그 강렬하게 가슴을 울리던, 전에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벅찬 무언가가 그녀를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자신보다 두배나 큰 덩치의 괴물을 순식간에 죽이고 그 피를 맛보는 자신의 모습이 기억속의 자신과는 매우 다른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것에 대해 오래 동안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에린은 자신이 누워있던 수술침대 같은 거대한 금속 도마 위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오랫동안 운동을 하지 않아서 방금 전의 흥분으로 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제대로 서 있을 수 조차 없었다. 에린은 일단 쓰러져 있는 괴물을 옆으로 치우고, 자르고, 다지고, 베기 위한 마치 요리를 하기위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이 쭉 늘어서 있는 방안을 뒤져 길게 말려 있는 천을 찾아 자신의 몸에 둘렀다. 알몸으로 있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일단은 그녀의 몸이 부드러워질수록 파고드는 추위 때문에 종이라도 찢어 덮어야할 판이었다. 그녀는 그 천으로 자신의 몸을 감으면서 마치 전에 집에서 쓰던 키친타월 같다는 생각을 했다.

"...... 일단 괴물은 해결했으니 여기가 어딘 지부터 알아볼까?"

에린은 천천히 다리를 끌며 입구로 보이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가 막 문을 열었을 때 그녀의 눈앞에는 아까 자신의 손으로 죽인 괴물이 둘이나 버티고 서있었다.

"릭탄 이게 어떻게 깨어났지?"

뚱뚱한 우르크스인이 키 작은 우르크스인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자 릭탄이라 불린 키 작은 우르크스인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말투로 말했다.

"잡기나 해.....하렝"

순간 릭탄의 눈에 쓰러져 있는 리릭이 들어왔다.

"어떻게 된거야. 리릭"

릭탄은 에린은 신경도 쓰지 않고 쓰러져 있는 리릭을 잡아 흔들었지만 리릭은 이미 죽은 후였다. 

괴물하나가 자신의 동료를 급하게 살피는 것을 바라보고 에린은 도망치려고 했지만 금방 하렝이라는 뚱뚱한 우르크스인에게 잡히고 말았다.

"하렝. 아무래도 이 인간여자가 리릭을 죽인 것 같은데!"

릭탄이 하렝을 보며 말하자 에린을 잡고 있던 하렝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이야기 했다.

"무슨 소리야 이런 조그만 인간 여자 따위가 리릭을 죽인다고 말도 안돼"

"하지만 인간 밖에 없었어!"

릭탄의 말에 에린을 잡고 있던 하렝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릭탄 일단 이 인간을 데리고 주인에게로 가보자"

에린은 이 괴물들이 자신을 금방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이 자신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대화하며 자신을 어디론가 끌고 가자 조금은 안심했다. 하지만 자신을 죽이러 데려가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자 안심할 일만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이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빠져나가야만 했다.

하렝과 릭탄은 이 인간여자를 주인에게 데리고 가는 것이 잘하는 일인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리릭이 죽은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이 인간여자를 데리고 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하긴 주인은 리릭이 죽은 것을 자신의 애완동물이 죽은 것보다도 신경 쓰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다. 주인이 기다리는 방 앞에서 하렝은 릭탄을 바라보며 말했다.

"릭탄 이 인간이 리릭을 죽였다고 하면 주인이 믿어줄까?"

"모르지만 방법이 없잖아......"

문 앞에서 잠시 망설이던 둘은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에린을 끌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50평방미터 정도의 넓은 방안 바닥은 에린이 처음 보는 직물이 카펫처럼 깔려 있었고 벽을 둘러 처음 보는 노란색 식물이 자라고 있었으며 그 밑으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꽤나 맑아 보이는 물을 바라보며 에린은 순간 갈증을 느꼈지만 죽음을 앞두고 느끼는 갈증에 회의가 느껴졌다. 죽기 전에도 너무나 솔직하기만 한 자신의 육체가 원망스럽기 까지 했으나 그런 생각도 오래 가지 않았다. 두 괴물은 에린을 끌고 가운데 커다란 의자에 앉아 있는 무언가로 데리고 가고 있었다.

그것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양은 인간 같았으나 머리가 더 컸고 검은 피부에 커다란 곁눈으로된 외눈을 가지고 있었고 입은 세로로 찢어져 있었다.

‘뭐지 저건. 이놈들과는 또 다르잖아?’

"뭐지 그걸 여기까지 데리고 온 이유가?"

주인은 두 명의 우르크스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요리를 기다리고 있던 그로써는 이 둘이 아직 조리도 하지 않은 재료를 자기에게 데려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인 죄송합니다만. 이 인간여자가 리릭을 죽인 것 같습니다"

릭탄의 말에 주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무슨 소리냐. 인간 따위가 리릭을 죽이다니?"

"하지만 조리실 안에는 리릭과 이 인간여자 밖에 없었습니다."

하렝이 주인에게 말하자 주인은 알 수 없다는 듯이 에린을 쳐다보았다.

에린은 그 세로로 갈라져 있는 입에서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바라보며 그것의 기괴한 움직임이 신기해 보였고 문득 에로틱한 상상에 빠지기도 했다. 

"이봐 인간 네가 리릭을 죽였나?"

에린이 이런 엉뚱한 상상을 지워버리려다가 그녀에게 익숙한 언어가 들리자 그녀는 고개를 들어 앞에 앉아 있는 괴물을 바라보았다.

"우리말을 할 수 있군요. 여기는 어디죠?"

에린이 묻자 주인이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네가 리릭을 죽였나?"

에린은 상대의 커다란 목소리에 위축되어 다른 질문은 하지 못하고 대답했다.

"리릭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내가 죽인 것 같아요"

에린의 말이 끝나자 주인은 두 명의 우르크스인을 향해 말했다.

"정말 바보 같군. 너희 우르크스인은 인간 여자 하나도 당하지 못한단 말이냐... 한심한 것들"

주인의 말이 끝나자 하렝과 릭탄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정말 이 인간 여자가 리릭을 죽였단 말인가. 하렝은 자신이 붙잡고 있는 이 인간의 두손을 그대로 꺾어버리고 싶었지만 더 잔인한 방법으로 친구의 복수를 할 것을 생각하며 그만두었다.

"이봐요 부탁인데 여기가 어디인지 알려줘요!"

에린이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말했지만 주인은 대꾸하지 않고 릭탄에게 말했다. 

"멍청하게 서있지 말고 저녁식사나 만들어와"

에린은 앞의 입이 세로로 찢어진 괴물이 자신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자 이 괴물들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자기 동료를 죽였으니 복수하려고 할 테지. 어쩌지 여기를 헤쳐 나가려면…….

그 때였다. 이번에는 더 긴 울림이 그녀의 가슴에서 지속됐다. 마치 자신의 이성이 어디론가 본능이 지배하는 밀림의 어느 숲 속으로 숨어버리는 듯 그녀의 눈에서 불꽃같은 살의와 목 속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지금껏 잊고 지낸 오랜 시간의 갈증이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그녀의 내부에서 마그마처럼 그녀의 이성의 탑들을 무너뜨리며 흘러내렸다. 뒤에서는 자신의 두 배가 되는 괴물이 그녀를 어디론 가로 끌고 가려고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심장에서 솟구치는 마그마가 숨긴 대지의 힘 같은 강한 힘이 그녀를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왜 그래 하렝!"

"움직이질 않아"

에린의 몸이 하늘로 솟구치며 하렝이 잡고 있는 손을 뿌리쳐 떨쳐내고 공중에서 몸을 돌려 떨어지며 하렝의 가슴 한가운데로 자신의 가늘고 곧게 뻗은 손을 꽂아 넣었다. 

"인간이라면 심장이 잡혔을 텐데"

그녀의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 나왔다. 마치 그동안 자신의 몸에 숨겨져 있던 뭔가가 분출하듯 괴물의 몸을 손으로 꿰뚫어버린 에린은 옆에서 겁에 질린 눈으로 에린을 바라보는 다른 녀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검은 피가 마음에 들었어!"

릭탄은 하렝이 순식간에 인간여자의 손에 가슴이 관통당하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도망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자신의 목 바로 밑에 인간여자가 다가와 있는 것을 보았다. 

에린은 멍하니 서있는 다른 한 놈의 밑으로 다가가 그녀의 머리 위에 있는 놈의 목을 물어뜯었다. 검은 피가 그녀의 머리위로 쏟아지다 놈이 뒤로 넘어지면서 멈추었다. 

그런 에린의 모습을 바라보던 주인이 에린에게 소리쳤다.

"넌 뭐야...? 인간이 아니잖아?"

"인간이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에린의 몸이 튀어 올랐다. 강한 힘으로 그녀는 한순간에 주인의 목에 달라붙어 어느 틈엔가 그녀의 입 밖까지 길러져 나온 송곳니를 깊게 박았다. 에린은 다른 맛의 피를 빨며 자신이 왜 이렇게 괴물의 피를 빨고 있는가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은 그녀의 목속을 지나가는 주인의 피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봐 제발...그...만...둬....이런....상...태...로..고...향.....에 ...갈수 ...없..."

괴물이 뭐라고 말을 하고 있었지만 에린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10여분이 지나가 괴물의 몸은 바짝말라 미이라처럼 누워 있었다. 에린의 입에서 거친 숨이 새어져 나왔고 작은 기침을 몇 번 하고 나서야 그녀는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자신이 했던 마치 악마와도 같은 행동들을 기억해 내며 그녀의 입가 가득 묻어 있는 괴물의 피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아직 살아 있는 괴물에게 물었다.

"여기가 어디지?"

"Se....l....d...o...m'

"셀돔 그런 곳이 있었나...? 너는 뭐지...?"

"하....란.....인...이..다..인간!"

하란인 이란 말을 듣고 에린은 아무것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설명해!"

"....난...널 샀을...뿐...이...야...냉동...실...에...컥"

주인은 힘겹게 말을 마치고 마지막 거친 기침을 내쉬고는 죽어버렸다.

"샀다고..."

에린은 이제 어느 정도 힘이 생긴 자신의 다리를 천천히 옮겨 자신이 맨 처음 있던 방안으로 들어갔다. 에린은 주위를 살펴 벽에 있는 냉장창고 같은 곳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벽으로 길게 그녀가 처음 보는 캡슐 같은 것들이 늘어서 있었다.

‘뭐지...이것들은 마치 냉동 장치 같은.....아!’

그제서야 에린은 자신이 병 때문에 냉동처리 되지는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캡슐들사이에서 자신의 이름이 붙은 캡슐을 찾았지만 캡슐들에 이름은 붙어 있지 않았고 다만 2012년이라 붙은 꼬리표를 찾고는 자신의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캡슐에는 그녀의 병명역시 찢져나가고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 생긴 갈증과 본능적인 살의가 분명 병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자신의 병을 알아낼 수 없었다. 에린은 천천히 냉동실에서 걸어 나와 중얼거렸다.

"대체 서기 몇 년인 거지...셀돔은 대체 어느 대륙에 붙어 있는 거고?"

그녀의 힘없는 걸음 뒤로 그녀가 살폈던 캡슐들 너머 또 하나의 숨겨진 있는 캡슐에 세린 가넷 이란 이름표와 함께 흡혈증이란 단어가 적혀 있는 것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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