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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월광

달부장 2005. 2. 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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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월광

검 한 자루 만을 허리에 찬 채 산 속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이 산만 넘으면 목적지에 다다른다는 생각에 날이 저무는 것도 상관치 않고 길을 재촉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달이 뜨지 않는 날이라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날이 어둡기 전에 다다르리라 생각했던 길은 내 생각과 달리 험해서 날이 어두워지자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 때 멈추고 노숙이라도 했어야 하는 건데 중간에 잘못 들어 결국엔 길이 아닌 곳을 헤매게 되고 말았다. 수풀과 나지막한 잡목의 가지들을 헤치느라 손에 이곳저곳 자그마한 상처가 많이 생겼는지 따갑고 쓰라렸지만 어디가 어떻게 다쳤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예전 기억대로라면 한참 전에 인가를 발견했어야 하는데 조그만 불빛하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길을 잘못 든 것이 확실했다. 두 눈을 뜬 채 장님이 되어 높이 솟은 나무 그늘에 잠겨 길을 잃고 만 것이었다. 이럴 때 늑대 떼라도 나타난다면 다음날 해를 보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난 허리춤의 칼자루를 꼭 잡아 보았다.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검이라 아직 상대 앞에서 뽑아본 적도 없지만 내 몸을 지킬 순 있을 거라는 생각이 검에 의지 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산을 넘기는 한 건지 내리막이 계속 되는 것이 그나마 마음 놓였다. 너무 긴장을 한 탓인지 몸이 너무 피곤해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돌리는데 저 앞쪽에서 뭔가 불빛 같은 것이 반짝이더니 금세 사라졌다.

도깨비 불 같은 것은 아닌 것 같고 인가에서 나오는 불빛 같았는데 금방 사라진 것이 이상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한 가닥 희망을 갖고 방금 그 불빛이 사라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 동안의 불빛이어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감을 잡지 못했는데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걸었는데도 인가도 보이지 않고 그 불빛도 다시 나타나지 않자 나는 점점 조급해졌다. 그 때였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불빛이 다시 한 번 반짝였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수풀도 사라지고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불빛의 방향으로 빨리 방향을 옮겼다. 내가 보았던 밝은 불빛은 아니지만 어딘가의 조그만 틈새로 새어나오는 불빛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뚜렷해졌다.

인가임에 확실했다. 나는 안도감에 얼굴 가득 미소까지 지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갔을 때 보인 것은 조그만 움막 한 채 뿐이었다. 예전에 있었을 문대신 걸쳐 놓은 거적사이로 새어나온 불빛이 나를 인도한 것이었다. 나는 거적 너머로 느껴지는 인기척에 밖에 서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에 계십니까?”

내 목소리에도 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나는 다시 한 번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산에서 길을 잃어 그런데 날이 샐 때 까지만…….”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안에서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으로 들어오시오.”

나는 남자의 들어오라는 말이 너무나 반가워 거적을 천천히 들추고 안으로 들어섰다. 장정 8명 정도가 누울 수 있을 만한 조그만 움막은 지붕은 겨우 모양새만 유지하고 있어 별이 그 틈으로 반짝이고 있었지만 바닥에는 짚이 깔려 있어 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거적으로 된 문 맞은편의 벽에는 한 남자가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마침 나뭇가지 하나를 불쏘시개 삼아 움막 바닥에 깔린 짚을 치우고 피운 조그마한 모닥불을 찔러 대다가 막 안으로 들어온 나의 얼굴을 올려 보았다.

 모닥불을 피운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지 방 안에 남아있는 매운 연기에 나는 작은 기침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 때문에 앉아 있는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다가 연기의 매운 기운이 가시고 나서야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모닥불의 흔들리는 불빛에 비친 남자의 얼굴은 상당히 괴기스러웠다. 오른쪽 눈 옆에서 뺨까지 내려오는 긴 상처며 치켜 올라간 눈썹과 눈은 모닥불 빛을 받아 지옥에서 금방 걸어 올라온 야차 같았다. 

“들여보내 주셔서 감사 합니다.” 남자의 험악한 얼굴에 놀랐던 나는 서둘러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는 문 옆에 앉았다.

“이렇게 달도 뜨지 않는 밤에 산속을 헤매다니 당신도 나처럼 성격이 급한 바보인 모양이군.” 남자는 조소인지 미소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어색하게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고향땅을 다시 밟을 생각에 바보가 된 모양입니다. 달 없는 날인 것도 잊고 말았으니.”

“하!”

내 웃는 얼굴을 바라보던 남자가 비웃는 것인지 수긍이 간다는 것인지 모를 코웃음을 치고는 다시 모닥불을 들쑤셨다. 얼마나 산을 헤맸는지 따뜻한 불 앞에 앉자 피곤이 몰려왔다. 이대로 누워 잠이라도 자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일 같아 눈을 부비며 잠을 쫒아 보려고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그걸 남자가 눈치 챘는지 지금까지와는 달리 꽤나 부드러운 어투로 나에게 물었다.

“밥이라도 먹고 산을 헤맨 거요?”

“낮에 주먹밥 하나를 먹었습니다.”

속으로는 네 먹었습니다라고 대답하려 했는데 배가 너무 고팠는데 생각에 없던 말을 내뱉고 말았다. 내 말에 남자가 옆에 있던 봇짐 속에서 뭔가를 꺼내 내 쪽으로 던졌다. 

“이거라도 먹어두고 눈 붙이시오.”

남자가 던져 준 것은 주먹밥이었다. 나는 남자의 호의에 너무 고마워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하고는 허겁지겁 주먹밥하나를 먹어 치웠다. 내가 주먹밥을 먹는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던 남자는 다시 봇짐 속에서 호리병 하나와 작은 꾸러미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목이 마를 텐데 물은 없고 술뿐이요. 그리고 꾸러미에 헝겊 조각하고 약이 들어있으니 손에 좀 바르시오. 참! 술로 조금 씻어내는 게 좋겠구먼.”

“예…….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호리병을 받아 술 한 모금을 마시고는 모닥불에 손을 비쳐 보았다. 피가 엉겨 붙어 있는 손이 엉망이었는데 여태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술을 한 모금 머금어 손에 품고 문지르자 손 전체가 타는 것 같이 쓰라리더니 이내 가라앉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산을 헤매느라 정신없었는데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런 호의를 받자 고마워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았다. 나는 손에 약을 바르고 헝겊으로 감은 뒤 호리병의 술을 한 모금 더 마시고는 마개로 막아 남자의 옆에 놓았다. 남자는 모닥불을 바라보다가 그 너머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신경 쓰지 말고 자시오. 난 잠이 오지 않아 이러는 것뿐이니까”

“그렇다면 염치없지만 눈을 조금 붙이겠습니다.”

“······.”

내 말에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문 옆 벽 쪽으로 누워 눈을 감았다. 너무 피곤해서일까? 금방이라도 깊은 잠에 빠져 들것 같았는데 누우니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계속 잠을 청했고 한참이 지나고서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하지만 깊이 잠들지 못하고 남자가 모닥불을 쑤석거릴 때마다 들려오는 나무 타는 소리를 다 듣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비몽사몽간에 누군가가 움막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뜨고 싶었지만 마음먹은 대로 쉽게 되지 않아 그냥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 지나자 목소리가 들려 왔다. 

“오늘은 정말 이상한 일이군 . 산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움막인데 불이 켜져 들어 왔습니다.”

뒤에 들린 목소리가 낯선 것이 움막 안으로 들어온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이 근처에 사는 사람인가 보구먼. 이 움막에 사람이 살지 않는 것을 아는 것을 보니.”

“이 근처에 살지는 않습니다. 매년 이곳에 들르기 때문에 아는 거죠”

“그런가!”

잠시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고 들어온 남자가 내 옆에 앉는지 지푸라기 소리가 들렸다. 이 때 즈음해서 나는 거의 잠에서 깨어 있었지만 일어나지는 않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그 때 나중에 들어온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등 뒤의 칼을 보니 검사이신 것 같은데 …….”

“검사라고 하기에는 부끄럽고 그저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뿐이요. 그러고 보니 이놈을 뽑아본지도 오래됐군. 그나저나 매년 이곳에 왜 오는지 물어봐도 되겠소.”

모닥불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나중에 들어온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모님 기일이 다 되어 고향에 들리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물으시는 분은 어디에 가는 길에 길을 잃으신 겁니까?”

“음. 그렇구먼. 부모님 기일이라. 난 오랜 친구를 만나기로 했소. 문하생으로 같이 수업을 받았는데 10여년이 다되어서야 다시 만나게 되었소.”

“10년 전이라면 당신도 꽤 젊었겠군요?”

“그렇지 젊은이만큼은 아니지만, 젊었지 혈기를 주체 못해 수도 없이 검을 뽑았었으니까”

나는 두 남자의 말을 듣고 있다가 그대로 누워 있을 수 없어 눈을 뜨고는 일어나 앉았다.

“아니 다 잔거요? 아무래도 우리 말소리가 너무 컸나 보구먼.”

모닥불의 남자가 일어나 앉는 나를 보고 물었다.

“아닙니다. 너무 피곤해서 인지 잠이 안 오는데요.”

“하하 그렇지 너무 피곤하면 더 잠이 안 올 때가 있지…….”

모닥불의 남자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는 나중에 들어온 남자를 바라보았다. 나도 그제야 나중에 들어온 남자의 얼굴을 보았는데 이제 막 스물을 넘긴 것 같은 젊은이였다. 짙은 눈썹이며 굳게 다문 입술이 다부져 보이는 인상의 남자는 오른손을 힘없이 무릎위에 올려놓은 채 왼손에는 칼자루를 잡고는 모닥불의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봐 젊은이 술이라도 한잔 할 텐가?”

“좋지요”

모닥불의 남자는 젊은 남자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내가 아까 마시고 놓아둔 호리병을 들어 젊은 남자 쪽으로 던졌다. 나는 분명 무릎위의 오른손을 들어 호리병을 잡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젊은 남자는 애써 호리병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호리병이 다리 사이에 떨어지자 칼자루를 잡고 있던 왼손으로 호리병을 들고 입으로 마개를 연 뒤에 술을 마셨다.

“오른손을 다친 모양이군요?”

힘없이 늘어져 있는 오른 손과 남자가 왼손만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내가 묻자 젊은 남자의 인상이 굳어졌다. 

“어릴 때 다쳤습니다. 붙어는 있으나 제대로 움직이지는 않지요”

젊은 남자의 말이 끝나자 모닥불의 남자가 말했다.

“자네도 검사 같은데 오른손을 못 쓴다니 왼손만으로 검을 쓰는 건가?”

남자의 물음에 젊은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릴 때부터 왼손을 써서 그런지 검 쓰는 데는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밤중에 검사 네 명이 움막 안에서 길을 잃어 만나다니 재미있군.”

나는 잠시 내가 잘못들은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 세 명이 아닌 네 명이라고 했고 젊은 남자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거 같았다. 모닥불의 남자는 움막 바깥을 가리키며 말했다. 

“밖에 내 친구가 와 있는 것 같군”

남자의 말과 함께 누군가 움막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 한손에는 검을 든 남자였다. 모닥불의 남자와 같은 연배로 보이는 그는 나와 젊은 남자를 한번 훑어보고는 모닥불의 남자 옆에 가서 앉았다.

“오래간만이군.”

“십 오년만이군”

분명 이 남자가 아까 말하던 친구가 분명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십 오년만이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일 텐데 아무 말도 없다니 조금은 이상했다. 그 두 사람이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바람에 움막 안에는 한동안 모닥불속의 나뭇가지 타는 소리만 간간히 들렸다. 젊은 남자는 자는 것인지 눈을 감고 벽에 기대어 있었고 나도 다시 눈을 감았다. 내가 눈을 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에 움막에 들어온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가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네.”

“약속은 약속이니까.”

모닥불의 남자 목소리가 매우 낮게 깔렸다.

“우연히 앞마을에서 자네를 만나 하려던 일을 그만 두고, 십 오년이 지난 뒤 다시 만나기로 한 날, 난 약속을 어기고 그들을 찾아 갔네”

“......”

“처음에는 단지 그녀의 얼굴을 다시 보기 위해서였네. 그녀가 자네와 정혼하고 난 뒤 내가 얼마나 상심했는지 자네는 모르겠지. 하지만 자네이기 때문에 나는 참았다네. 그런데 그자가 그녀와 함께 도망쳤으니 내가 어떻게 참을 수 있었겠나 게다가 도망치는 것을 만류하는 내 동생의 팔까지 못쓰게 하고 갔으니······.”

두 사람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까. 궁금했지만 물을 수는 없었다. 

“그만두게 모두 지난 일이니. 젊은 시절의 추억거리일 뿐일세. 그 사람들은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군.”

“자네처럼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벌써 그 자를 용서한 건가. 난 평생토록 증오할 거라고 생각했네만. 그런데 자네 생각만큼 잘 살고 있지는 못 할 걸세.”

그 때였다. 잠을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어릴 적에 팔을 다쳤다고 했었지요!”

갑작스런 젊은 남자의 목소리에 두 남자 모두 당황하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십 오년 전에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이 누군가에게 살해 당하셨습니다.”

“......”

“이 움막에서”

젊은 남자의 말에 모닥불 남자의 웃음소리가 뒤이어 들려 왔다.

“하하 젊은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하지만 젊은 남자는 모닥불 남자의 말에는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두 명이 왔었다는 겁니다. 어머니는 밤늦게 까지 놀고 돌아오는 아들을 위해 이 움막 앞에 등을 켜두곤 하셨는데 그날은 불이 켜져 있지 않더군요. 이상하게 생각하며 어두운 방안에 들어섰을 때 나는 바닥에 나란히 누운 어머니와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멍청히 서 있던 그 때, 또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뭐라 입을 열새도 없이 저는 쓰러졌지요. 남자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칼로 찌르고 황급히 나가더군요. 칼은 제 오른쪽 어깨를 베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가슴을 찔렀더군요. 그때 죽지는 않았지만 오른쪽 팔뼈가 망가져 그날 이후 다시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죠.”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나중에 들어온 남자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모닥불의 남자는 이제 아무런 말도 없이 자신의 호리병을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처음에는 한 명이 다시 돌아와 나를 찌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다시 찌르고 허겁지겁 도망치는 모습에 나는 그 날 두 명이 왔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날 밤늦게 집에 가던 길에 나를 위해 켜두던 어머니의 등을 들고 내 옆을 지나던 남자의 얼굴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요. 흔들리는 등불에 비추던 남자의 흉터와 날카로운 눈 말이지. 지옥에서 올라온 야차 같은 ....”

순간 창하고 검이 뽑히는 소리에 나는 놀라 눈을 뜨고 말았다.

모닥불 남자의 칼이 뽑혀 젊은 남자를 노리고 있었고 나중에 들어온 남자의 얼굴은 놀란 표정이 되어 있었다. 나 역시 갑작스런 일에 놀라 사람들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기만 할뿐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가 없었다. 

젊은 남자의 왼손에서 번쩍하고 뭔가가 빛났다. 앉은 자세로 젊은 남자가 뽑은 검이 모닥불 남자의 검을 위로 쳐올리고 그대로 모닥불 남자의 가슴에 박혔다. 검이 뽑히고 남자의 피가 모닥불에 흩여져 치익하고 타들어 갔다. 뒤로 나가떨어진 모닥불 남자의 몸이 몇 번 떨더니 그것마저도 조금 뒤에는 멎었다. 하지만 젊은 남자의 검은 다시 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나중에 들어온 남자에게로 향했다.

“뻔뻔하게도 십오 년이 지나 다시 찾아오고 게다가 자신들이 사람을 죽였던 곳을 잊고 길을 잊어 다시 찾아오다니. 아무래도 편히 잠들지 못한 부모님들이 너희들을 이곳으로 끌고 온 모양이구나.”

“무슨 소리야? 난 모르는 일이라고”

나중에 들어온 남자의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다.

“난 내가 들어섰을 때 저 남자의 얼굴을 보고 확신했지만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었어. 모닥불의 비친 그의 얼굴이 예전 내가 기억하던 그대로였지만 나 스스로도 믿을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당신이 들어와 15년 전 그들의 집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확신했지. 내 팔을 이렇게 만들고 돌아가신 두 분을 다시 죽인 남자가 바로 당신이라는 사실을”

공포에 질렸던 남자의 손이 모닥불 남자가 떨어뜨린 칼을 들고 젊은 남자의 칼이 다시 한 번 빛나 남자의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뼈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뜨거운 피가 품어져 나와 내 얼굴에 까지 튀었다. 단 한 번의 움직임이었다. 두 사람 모두 단칼에 죽고 말았다. 너무나 빨리 일어난 일에 나는 멍하니 젊은 남자의 얼굴만을 바라볼 뿐얼굴에 묻은 피도 닦을 수가 없었다. 젊은 남자는 온통 핏자국이 가득한 방안을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 난 무슨 말인가 그 남자에게 해야 할 것만 같았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오직 빨리 이곳을 나가야 한다는 생각 밖에 할 수 없었다.

젊은 남자는 밖으로 나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더니 무릎으로 기어 움막의 거적문을 들치고 고개를 밖으로 내민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날도 오늘처럼 달이 뜨지 않은 밤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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