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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인가...

학교 뒤 언덕

달부장 2005. 2. 1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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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뒤 언덕

나는 해가 저물어 가는
학교 뒤 언덕에 있습니다.

내 고향 군산의 바람은
어찌 보면 약아빠진 여우같으나
심심치 않은 장난 같기에
난 바람을 사랑합니다.

비록 아직 자갈만이 잔디 같은
그 깎여진 언덕의 한 가운데
오랜만의 혼자임을 엉뚱한 미소로 즐기며
저기 도서관이 올라가는 서편의 언덕을 바라보다
어린 시절 헤매던 어느 산을 떠올립니다.

달빛의 고마움을 생전 처음 느끼며 한 치도 보이지 않는
어느 산등성이, 기울어진 지형의 혹독함에
앞서간 어느 친구의 불빛은
외로움을 끌어다 떨리는 불빛 앞에 놓았습니다.

공포보다 끈질기던 그 외로움을
지나는 이 하나 없는 학교 뒤 어느 언덕의
오후에 사람 구경 나온 시골 할머니 마냥 한가로이 그렇게
즐기고 있습니다.

건조이 산을 넘은 바닷바람은
이제 그 고향을 잊고 봉우리 진 목련에
반해 버렸을지 모르나

기분 좋게 벚꽃 가득 문을 연
날 다스한 해 저무는 오후
공교롭게도 나 몰래 숨어 있던
어느 연인의 속삭임을
눈치 없이 엿들으며
언젠가 아스팔트 검게 깔릴
이름 없는 언덕 꼭대기에서
혼자라는 외로움을 되씹고 있습니다.

나는 해 저문 학교 뒤 언덕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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