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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인가...

담배 단상

달부장 2005. 2. 1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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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겨울
한 선배가 나에게 말했다.
입에다 불을 때니 좀 따뜻하겠다고
하지만 나는 추웠다.

입영 통지서의 초조함 때문인지
담배로 수축된 혈관 때문인지
뿜어져 나오는 연기와는 상관없이
나는 추웠다.

그 해 겨울
난 미치도록 추위를 타고 놀았다.

그리고 다음의 겨울은 더 추웠다.
스포츠로 깎인 머리 때문인지
낯선 강원도의 바람 때문인지
미치도록 추워 입에 욕지기를 달고 살았다.

그 해 겨울
난 눈 쌓인 산에서 졸다가
얼어 죽을 뻔 했다.

그런데 우스운 건
내가 기억하는 생애 가장 추웠던 두 해의 겨울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시원해지기는커녕
더 더워질 뿐이라는 것이다.
그 허연 눈밭을 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한숨 섞여 목이 턱 막혀오는 것이다.

아무래도 그 때 그 선배 말처럼
입에 불을 때고 있어서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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