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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늑대들을 위한 진혼곡

달부장 2005. 12. 2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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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늑대들을 위한 진혼곡

섬 광과 함께 고막을 찢을 것 같은 폭음이 울리는 순간 헬릭은 본능적으로 참호 바닥에 고개를 박고 엎드렸다. 폭음은 심장을 쥐고 흔들어 그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고 섬광 때문에 눈을 감았는데도 형용하기 힘든 작은 불빛들이 망막을 어지럽혔다. 뒤이어 머리 위로 흙과 잔해 그리고 죽은 병사들의 살점 따위 들이 우박처럼 떨어져 내렸다. 소음이 가라앉고 그의 몸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자 헬릭은 다시 소총을 들고 일어서 방금 전 폭탄이 떨어졌던 참호 너머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전투용의 감지 장치들은 반란군의 전파 방해 장치들이 뿜어내는 노이즈에 의해 엉망이 되어 버린 데다 방금 전의 폭발로 더욱 상태가 나빠져 버려서, 그는 오직 자신의 오감에 의지해 사격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서는 준이라는 동양인 용병이 휴대용 미사일 발사기를 어깨에 올리고 조준장치를 만지고 있었다.

“적 전차를 조준해!”

헬릭이 전방 언덕 너머에서 들리는 저음의 전차엔진 소리를 듣고 소리치며 마침 참호를 향해 접근하는 반란군 병사를 조준하는 순간 준의 어깨에 있던 미사일 발사기가 작은 관에 공기를 불어 넣었을 때 나는 것 같은 고주파 음을 내더니 발사되었다. 미사일은 지상을 낮게 날아 전방을 향해 날아가는 것 같더니 준이 조종하는 발사기의 다이얼형 트리거에 의해 짧은 곡선을 그리며 선회해서 막 언덕 위로 모습을 드러낸 적 전차의 측면 장갑에 명중했다. 폭발과 함께 전차 주위에 있던 보병 몇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고 전차는 충격으로 약간 들썩인 것 같더니 이내 정지했다. 준이 다음 공격을 위해 발사기에 미사일을 장착하는데 그 때, 헬릭의 왼편에서 방어하고 있던 우르크스인 용병이 적의 총탄에 팔이 떨어져 나갔는지 팔을 잡고 소름끼치는 비명을 질렀다.
그 모습에 헬릭이 참호 아래로 몸을 숨긴 채 음성 통신 장치의 마이크에 대고 위생병을 부르다가 우르크스인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를 참지 못하고 참호를 기어 그에게 다가갔다. 평소라면 인간이 가까이 오는 것도 싫어했을 테지만 (우르크스인들은 지구인들을 싫어했다.) 그의 발치에 떨어져서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펄쩍 펄쩍 뛰어오르며 경련을 일으키는 팔 때문인지 아니면 고통 때문인지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헬릭은 일단 팔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 지혈용 스프레이를 뿌려 출혈을 막고 바닥에 떨어진 팔을 그의 전투 배낭 안에 집어넣고는 소리쳤다.

“야전 병원에 가면 갓 태어난 것처럼 감쪽같이 붙여 줄 테니까 소리 좀 그만 질러대! 그 비명소리 때문에 정신이 없으니까!”

헬릭의 말에 우르크스인은 이를 악물고 인상을 쓰는 것 같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헬릭은 우르크스인의 배낭을 뒤져 안정제를 꺼내 그의 목에 주입한 뒤 마침 참호를 따라 도착한 위생병에게 그를 맡기고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잠시 적의 포격이 뜸해진 틈을 타 탄창을 교환하는 사이 준이 발사기를 들고 일어서며 소리쳤다.

“11시 방향에서 Crawler(적 전차의 코드네임) 접근한다. 엄호해 줘!”

그 소리에 헬릭이 일어나 접근하는 적을 향해 제압사격을 하자 조준을 마친 준이 방아쇠를 당겼는지 다시 고주파 음이 울렸다. 그런데 그 순간 뭔가 강한 힘이 헬릭을 날려 버렸다. 준이 있던 방향으로부터 밀어닥친 그 힘은 섬광과 폭음 그리고 엄청난 압력으로 몰아쳐 헬릭은 모든 감각이 단절된 채 10여 미터를 날아 참호 구석에 물이 반쯤 찬 가죽 주머니가 내던져 진 것처럼 처박혔다.

귀 를 마비시키던 폭음이 잦아들고, 눈이 또렷해지기 시작하면서 허벅지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헬릭은 통증을 참고 상체를 일으켜 참호 벽에 겨우 몸을 기댄 뒤에 방금 전 준이 있던 자리를 확인했다. 하지만 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방금 전 그를 밀어낸 레이저 유도형 유탄에 산산조각 나 날아갔을 것이 분명했다. 헬릭은 자신의 허벅지에 박혀 있는 미사일 발사기의 파편 조각을 뽑아내고 지혈용 스프레이를 뿌린 뒤에 참호를 기어 우르크스인이 있던 자리에 있던 다른 미사일 발사기를 잡았다. 다행이 이미 장전은 되어 있는 상태여서 발사기의 조준경으로 전방의 상황을 살펴 본 뒤에 참호 위로 발사기를 내밀어 미사일을 발사 했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 조준경 옆에 달린 트리거로 미사일을 유도하여 옆 참호 쪽에 포격을 가하고 있는 Crawler의 후면 장갑에 명중 시켰다. 엔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며 전차가 멈추자 조준경으로 그것을 확인한 헬릭은 다시 소총을 잡고 접근하는 보병들을 향해 발사했다. 부서진 전차 옆에 엎드려 공격하던 적 보병 한명이 헬릭이 쏜 총에 맞아 머리가 박살나는 순간 헬릭의 머리 위로 대기를 찢는 소음과 함께 정부군의 전폭기 한 대가 나타났다. 그 것을 신호로 헬릭이 귀를 막은 채 다시 참호 안으로 몸을 숨겼고 오래 지나지 않아 참호 위로 붉은 섬광이 지나가더니 뒤이어 폭발음과 흙먼지가 헬릭의 머리위로 날아들었다. 땅의 흔들림이 가라앉고 나서 헬릭이 고개를 들어 전장을 확인했을 때는 뿌연 먼지뿐, 살아 있는 것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전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폭음과 섬광이 가득하던 전장이 한순간에 적막한 죽음으로 바뀐 모습에 전폭기의 폭탄투하 때문이 아니라 전장 바닥에 숨어 있던 대지의 분노가 몸을 일으켜 전장을 휩쓸어 생겨난 것 같다고 헬릭은 생각했다. 폭격으로 적의 공격이 멈추어 순식간에 고요가 찾아온 전장에 헬릭만이 살아남아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래왔지만 혼자 살아남은 전장의 고요는 다른 어느 때 보다 잔인하게 그를 고독으로 끌어 당겼다.

바닥에 주저앉아 소총을 내려놓은 헬릭의 눈에 준의 다리가 보였다. 하지만 그는 그저 잠시 그렇게 앉아 바라보기만 하다가 다시 소총을 들고 전장에 살아남은 것이 있나 살펴보았다. 먼지가 가라앉아 죽은 병사들의 시체와 무기가 보이더니 왼편 멀리, 살아남은 아군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서도 기쁨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차피 내일 새벽에는 또 이런 일을 겪어야 할 것이고 더한 긴장과 고통이 그들을 조여 올 것임을 그들도 그리고, 헬릭도 알고 있었다.

헬릭이 다시 앉아 있는 사이 어느새 앤이 참호를 따라 걸어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살아남은 건 너 뿐이야?”

앤의 물음에 헬릭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누구더라. 매일 지구인들에 대해 불평을 내뱉던 그 우르크스 녀석은 팔이 날아가 후방으로 실려 가는 바람에 살았어.”

“우리 쪽이 좀 낫네. 참! 주영이라는 그 동양인은?”

앤의 말에 헬릭은 준의 본명이 주영이었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 발치에 놓여 있는 주영의 다리를 잡아당기며 앤에게 말했다.
“아마도 이게 그 친구 다리일거야.”
“……”
앤은 헬릭이 다리를 옆에 끌어 당겨 놓는 사이 옆에 앉았다.

스무 살을 갓 넘긴 그녀의 옆태는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었고, 먼지에 찌든 그녀의 금발은 제 색을 잃기는 했지만 여전히 헬릭의 눈을 유혹했다. 아마도 그녀가 군복을 벗고 하늘색 원피스나 비키니 수영복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면 그녀에게서 전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은 매우 힘든 일 일거라고 헬릭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 만은 여전히 강인했고 칼날 같았으며, 언제라도 살의와 본능으로 변할 수 있다는 듯 퍼렇게 반짝였다.
그녀는 헬릭이 지구인 이라는 사실 때문인지 가끔 그를 찾아오곤 했다. 참호의 어두운 습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걸어와 매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학교친구나 오빠를 대하듯 말을 건네 오곤 하는 그녀에게 헬릭은 가끔 부담을 느끼기도 했지만 언제 부턴가 그것은 사라져 버렸고 특히나 지금처럼 치열한 전투가 끝난 뒤 그녀의 방문은 어느 때 보다 반가워, 내심 기다리게 되어 버렸다. 그것은 방금 전까지 같이 싸우고 있던 전우들의 죽음을 아주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쉽게 허락되지 않는 일상의 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헬릭은 앤이 옆에 앉는 것을 보고는 다른 때에 비해 피곤해 보이는 그녀에게 도움이 될 것이 없나 주머니를 뒤져보았지만 별 다른 것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가 다른 주머니로 손을 옮기며 저번에 받아 두었던 전투식량을 자신이 벌써 먹어버렸는지 생각하는 사이, 앤이 헬릭의 얼굴 앞으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녀가 내민 것은 손바닥 크기만 한 초콜릿이었다. 그것도 지구에서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헬릭은 구하기 힘든 것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녀가 건넨 초콜릿을 반으로 잘라 그녀에게 다시 건네며 말했다.

“이런 건 좋아하지 않더라도 먹어 두는 게 좋아.”

앤이 살짝 웃으며 그것을 받아들자 헬릭도 나머지를 한 입 깨물었다. 먼지 때문에 텁텁했 던 입안에 초콜릿의 달콤함이 퍼지자 헬릭은 오래간만에 맛보는 느낌에 기분이 조금 좋아지는 것 같았다.

‘이런 달콤함을 느껴 본 게 언제였더라……’

헬릭이 초콜릿의 맛을 음미하는 사이 앤이 받아든 초콜릿을 보고만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나 이번에 돌아가게 됐어.”

“뭐?”

갑작스러운 말에 헬릭이 놀라 되묻자 앤이 웃으면서 자신의 손에 있던 초콜릿을 남아 있던 포장지로 잘 싸서 헬릭의 조끼 주머니에 넣어주고는 말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어. 아마 오늘 저녁 즈음에 후방으로 가게 될 거야.”

“축하해!”

헬릭의 말에 그녀는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미소는 왠지 기뻐 보이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씁쓸함이 섞인 미소를 보이던 앤은 초콜릿을 넣어둔 헬릭의 조끼 주머니를 두드리며 일어났다.

“내 마지막 선물이야. 아마 다시 만날 일 없을 테니 초콜릿을 먹게 되거든 내 생각해줘.”

“미리 알았더라면 나도 멋진 선물 준비했을 텐데. 돌아가거든 다시는 전쟁터에 나오지 마. 널 기다린다는 여동생이랑 이런 지저분하고 끔찍한 곳은 잊어버리고 행복하게 살아.”

“응. 그래야지…….아니 꼭 그럴 거야. 너도 꼭 돌아갈 수 있게 되길 빌게.”

앤 이 이 말을 남기고 아쉬움과 불안이 담긴 표정으로 돌아가자 헬릭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남아있던 초콜릿 조각을 입에 집어넣고 그녀가 살아 돌아가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언젠가 그녀가 했던 여동생이야기를 떠올렸다. 병에 걸린 여동생의 치료비를 위해 용병으로 지원했다고 이야기하던 앤의 얼굴과 그녀가 병원에 있는 여동생과 만나는 모습이 겹쳐지자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어쩌면 초콜릿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고 헬릭은 잠시 생각했다.) 그렇게 잠시 초콜릿과 앤에 대한 상상을 즐기던 헬릭은 입 안의 달콤함이 사라지자 통신 장치의 음성 채널을 열어 피해 상황 보고와 탄약 보충 요청을 하고는 소총을 집어 들고 다시 전방을 주시했다.

잠시 후 보충 병력이나 탄약 지원이 아닌 지휘본부로 부터의 음성메시지가 도착했다.

- 지휘본부로 귀환하라. -

헬 릭은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소총을 들고 참호 밖으로 머리가 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일어섰다. 준인지 아니면 주영인지 이제는 확인할 수 없는 친구의 다리를 한 번 바라보고는 지휘본부를 향해 갔다. 보충병을 보내지 않고 자신을 본부로 불러들이는 것이 어쩌면 방어선을 포기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 돌아가 남아있는 다리만 이라도 가져 올까 생각했지만 돌아서지는 않았다. 이미 죽은 동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전장에 넘쳐나는 무가치함에 그는 너무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긴 참호를 빠져나와 지휘본부가 설치된 벙커 안으로 들어서자 문 앞에 설치된 보안센서가 인식표로부터 보안 인증 절차를 시작함과 동시에 레이저 스캐너가 생체적 특징 등을 수집해 신원확인 과정을 시작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자 헬릭은 메스키트(Mesquite)라 불리는 조립형 지하벙커 안으로 들어갔다. 벙커 안으로 고개를 숙이며 들어서자 용병 부대장인 로만과 정부군 장교 한명이 3차원 지리정보 시스템 위로 떠올라 있는 홀로그램을 가운데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로만은 헬릭이 들어오는 것을 발견하자 정부군 장교에게 눈짓을 보내고는 말했다.
“자네에게 새로운 임무를 맡기려고 하네.”
로만은 이렇게 말하고는 간이 의자에 앉았고 정부군 장교는 한 걸음 앞으로 나와 헬릭에게 악수를 청했다.
“유진 레우야 라고 합니다.”
헬릭은 가볍게 악수를 나누고는 로만을 바라보았다. 간의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너도 결국은 소모품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로만에게 헬릭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로만! 새로운 임무라는 건 나 같은 용병에겐 해당사항이 없을 텐데.”
“음, 맞아. 그렇지 않다면 레우야 대위께서 여기 까지 오실 필요가 없었겠지.”
로만이 이렇게 말하자 레우야 대위가 주머니에서 휴대용 저장장치로 보이는 것을 꺼내 3차원 지리 정보 시스템의 입력 단자에 연결하고는 작동시켰다.
“3일전 아군의 무인 정찰기 한 대가 ‘마르스의 묘지’ 근처 오아시스에서 반란군의 주둔지로의심되는 건물을 확인하고는 바로 격추되었습니다. 군 정보국에서 정찰기가 마지막으로 송신한 데이터로부터 반란군의 정찰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결과를 도출해 그 확인 및 처리에 대해 고민하던 중에 헬릭 에스몬드 씨를 찾아오게 된 겁니다.”

레우야의 말에 헬릭은 정찰부대의 처리에 대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위성을 통해 위치를 확인하고 미사일 공격이나 폭격을 할 수 있을 텐데 왜 자신에게 이런 임무를 맡기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의아해 하시는 것 이해합니다. 그런데 그 지역에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그 문제 때문에 다른 공격을 하지 못하는 겁니까?”
헬릭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묻자, 레우야가 지리 정보 시스템의 홀로그램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이것을 봐 주십시오. 마르스의 묘지는 조금 특별한 지역입니다. 수백 년이 된 이 거대한 숲은 식물들이 너무 빽빽이 자리 잡고 있어서 위성으로 확실한 지점을 파악하기 쉽지 않습니다. 사실 정찰기가 그 건물을 찾은 것도 우연이었지요. 게다가 정찰 부대의 주둔 위치가 계속 변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폭격으로 인한 산불로 그 원시림이 재가 되는 것도 윗분 들은 원치 않으시고요.”
“그렇다면 지상 부대를 투입할 수도 있을 텐데요.”

“물론 그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겠지만 현재 정부군에서 그 곳에 투입해 작전을 수행할 만한 적당한 부대를 물색하기 쉽지 않습니다. 또······.”

“또 다른 게 있습니까?”

“네, 그 곳은 신성한 곳이라 우리들은 그 곳에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됩니다.”
레우야 대위의 말에 헬릭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뒤 쪽에 앉아있던 로만도 비슷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무슨 종교적 이유 같은 겁니까? 지구인은 들어갈 수 있는 거군요.”
“그렇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그 곳에 들어가선 안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욱 반란군 측이 왜 그곳에 들어갔고 그 곳에서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싶은 겁니다.”
“그렇다면 주 임무는 그 곳에서 적을 발견 그들을 관찰하는 일이 되겠군요.”
“더불어 그들이 목적을 완수하지 못하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로만 대장에게 저격 실력이 좋다고 들었습니다만.”
“······.”

헬릭은 그게 무슨 말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옆에 앉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로만이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 주는 휴가라고 생각하게. 게다가 임무 완수 뒤에는 꽤 많은 보수가 지급 될 거야. 내가 볼 때 자네에게는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쉬울 것 같은데 말이야.”
로만은 이렇게 말하고 징그러운 웃음을 흘렸다. 헬릭은 그의 징그러운 웃음을 보며 잠시 생각했다. 지겨워진 이곳을 떠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앤이 사라지고 나면 지겨운 살인과 죽음의 시간만 계속 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이상한 불안이 그를 결정내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불안은 레우야와 로만의 상반된 표정에서도 느껴졌다.
“오늘 바로 출발 하는 겁니까?
헬릭이 승낙의사를 비치자 레우야 대위는 다행이라는 얼굴로 로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가 말했다.
“네! 오늘 바로 출발하실 수 있습니다. 필요하신 물건을 말씀해주십시오.”
“목록을 뽑아 놓겠습니다. 준비되는 대로 바로 출발하지요.”

헬 릭이 목록에 적어 놓은 물건은 그의 개인 물품과 정부군 격수에게 기본으로 제공되는 품목들 이 외에도 ITV(Individual Tactical Vest)와 저격 로봇 2기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물품 목록을 전달하고 레우야 대위로부터 2시간 뒤에 출발할거라고 연락을 받은 뒤 작전계획서와 작전 개시 후 사용 될 통신채널의 해독 및 암호화를 위한 키 코드를 전송 받았다. 남은 두 시간 잠을 자던지, 배를 채우던지, 그 외에도 할 일은 많았지만 그는 앤을 만나고 싶었다. 특별히 그녀에게 할 말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모르는 그녀를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혹시 앤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아나?”
로만에게 이렇게 묻자 그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헬릭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 애라면 벌써 후방으로 갔을 거야. 아까 도착할 지원차량 편으로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니까.”
“그렇군!”
“정이라도 들었나? 서운한 표정을 하는 것을 보니 그런 것 같은데?”
헬릭은 대답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등을 기댔다. 서운함일까? 하고 생각했지만 확실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는 그는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로만이 그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일어나!”
헬릭은 눈을 비비며 일어나 로만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벙커 뒤의 착륙장에 VTOL 수송기 한 대가 착륙해 있었다. 그리고 나지막한 엔진음 사이로 레우야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서 올라타십시오. 물건들은 모두 실어놓았습니다.”
헬릭은 수송기로 달려가 레우야의 손을 잡고는 올라탔고 아직도 벙커 입구에 서서 헬릭을 바라보고 있던 로만이 소리쳤다.
“휴가 처럼 생각하고 푹 쉬고 오라고 그렇다고 너무 쉬어서 시체가 되진 말고.”

수송기가 이륙하자 레우야 대위가 그에게 전투복과 개인 장비들을 건넸다. 그리고 헬릭이 그것을 착용하는 사이 말했다.
“작전 계획서에도 나와 있지만 그 곳은 다른 곳에 비해 산소 농도가 높습니다. 혹 산소 중독 증상을 일으킬지 모르니 마스크를 착용하셔야 할 겁니다.
“확실히 폭격은 힘들겠군요.”
“네.”
레우야가 대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헬릭은 장비를 착용하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두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헤드기어 센서를 바꾸자 사막의 모습이 나타났다.
“마르스의 묘지는 신비한 곳입니다. 사막 한 가운데 위치한 거대한 원시림은 수많은 신화의 무대가 되기도 했지요.”
“오아시스 인가요?”
“아주 거대한 오아시스라고 할 수 있겠군요. 어쨌든 저희들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니 다녀오신 뒤에 그 곳 이야기나 전해 주십시오.”
레우야는 이렇게 말하고는 궁금증에 찬 눈빛으로 헬릭을 바라보았다.
“복귀도 이 수송선으로 하게 됩니까?”
“추후 변경 될 수도 있지만 지금 계획은 그렇습니다. 복귀 지점에 저희가 갈 겁니다.”
잠시 후 적 대공무기를 피하려는 듯 수송기가 고도를 높이자 레우야 옆에 앉아 있던 승무원이 말했다.
“지역에 거의 도착한 것 같습니다. 캡슐에 탑승해 주십시오.”

헬 릭은 일어나 수송기 뒤쪽 해치에 설치된 낙하용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끈적끈적하고 반투명한 충격 완화용 젤이 차올랐다. 캡슐의 유리를 통해 헬릭을 바라보고 있던 레우야 대위가 어디서 배웠는지 엄지손가락을 세우는 모습이 보였고 그 모습도 얼굴까지 올라온 젤에 의해 희미해 졌다. 잠시 후 VTOL 기가 정지하더니 옆에 놓인 물품이 캡슐이 낙하되고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순간 케이블이 연결된 캡슐이 사출되면서 헬릭은 낙하를 시작했다. 어둠속을 관통하며 떨어지더니 신축성 있는 케이블이 캡슐을 낚아채면서 서서히 낙하속도가 감소되었고 헬릭의 감각기관이 정지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캡슐의 아래 해치가 다시 열리면서 다시 낙하를 시작했다. 그 사이 공기와 접속 경화가 시작된 충격완화용 젤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헬릭을 떨군 캡슐은 케이블과 함께 수송기로 회수 되었다. 낙하를 시작하면서 젤의 외부는 경화되어 신축성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지상에 거의 다다랐을 때는 내부에서 화학 반응이 시작되어 기하학 기체를 발생하며 부풀어 올랐고 또한 남은 잔여물들은 기하학적 구조를 가진 얇고 빽빽한 기둥들로 변화해 갔다. 그것은 동물의 뼈를 확대해 보았을 때와 비슷한 모양 이었다. 부풀어 오른 젤이 처음의 5배 크기로 커졌을 때 외벽이 나뭇가지에 긁히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바닥에 닿았다.
달걀 따위가 바닥에 떨어져 깨지 듯 부서진 충격 완화용 젤은 지상에 닿자마자 액체가 되어 바닥으로 스며들어 갔고 헬릭은 그 속에서 고개를 들며 숨을 몰아쉬었다. 실제로 이와 같은 낙하는 낮은 고도에서 대포를 쏘듯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수의 병력을 투입하기 위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호흡에 대한 대비책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헬릭의 경우는 워낙 높은 고도에서 낙하하느라 캡슐과 케이블 등을 이용 이중 낙하하는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낙하 시간이 길어져 산소 공급에 대한 문제를 생각했어야 하는데 그것을 생각지 않은 것이었다.
헬릭은 대충 자신의 몸에 남아 있는 젤의 잔여물을 대충 털어내고 (어차피 곧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장비의 낙하지점을 헤드기어로 확인했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았지 때문에 금방 장비를 회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헤드기어의 센서를 야간모드로 맞추자 증폭된 별 빛으로 사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 열명이 팔을 잡고 안아야 겨우 안을 수 있을 것 같은, 몇 년 수령인지 모를 나무가 빽빽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그 거대한 모습에 헬릭은 잠시 정신을 놓고 쳐다보았다. 그것은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거대한 창조물은 별의 바다나 우주에 떠있는 어떠한 인공물 보다 감동적이었다. 살아 있는 거대한 식물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헬릭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장비들의 위치신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내는 소리가 고요한 숲을 울렸다. 머지 않은 곳에서 장비들을 찾아낸 헬릭은 가장 먼저 마스크를 찾아서 쓰고 케이스에서 저격 로봇 박스를 먼저 찾았다.
“이런!”
뭐가 잘못 되었는지 헬릭이 작게 중얼거렸다. 안에 포장 된 두 개의 로봇중 한 개는 저격 로봇이 맞았는데 다른 하나는 다목적 로봇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물건을 구하지 못해 급히 집어넣느라 그리 된 모양이었다.
“이런 것을 집어넣었으면 미리 말해 줄 것이지······.”
불평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려 보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헬릭은 먼저 다목적 로봇을 조립하고는 로봇의 머리 뒤쪽에 있는 출력 단자를 헤드기어에 연결해서 프로그래밍 상태를 확인했다. 적어도 저격용 로봇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명령어들이 추가 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난 뒤 구동버튼을 눌렀다.
헤드기어로 로봇의 자체 검사 항목들이 지나가고 설정화면에 사용자 입력은 위한 메시지 박스가 더올랐다. 케이블이 연결 되어 있지 않았다면 로봇의 음성으로 출력될 내용들이었다. 헬릭은 다목적 로봇의 음성 출력 설정을 꺼놓고는 패스워드 설정 및 입력사항들을 문자채널을 열고 손에 끼고 있는 장갑의 입력장치를 이용해 손가락으로 써서 입력했다. 그리고 로봇이 본격적인 구동을 알리는 메시지를 내보내자 마지막으로 원격 조종을 위한 설정을 켜고는 저격로봇 조립을 지시한 뒤 케이블을 분리했다. 다목적 로봇이 저격 로봇을 조립하는 사이 헬릭은 케이스를 분해하고 (낙하용 케이스는 분해해서 로봇의 외부 장갑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다목적 로봇이 사용할 저격 소총을 검사해 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장비들이 담긴 케이스를 열어 자신의 Blink 430(저격 소총)을 꺼낸 뒤 레우야 에게 말했던 휴대용 무 탄피 탄 제조 장치와 탄두 , 재료들을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나머지 물품들은 자신의 케이스에 옮겨 놓고 완성된 저격 로봇의 상태를 확인한 뒤( 다목적 로봇이 인간형인데 비해 저격 로봇은 4개의 다리에 긴 총신이 나와 있는 비 인간형 로봇이었다.) 분해한 케이스를 로봇들에게 부착하고는 길리슈트(위장복)를 입혔다.
모든 준비를 마친 뒤 헬릭은 다목적 로봇에게 자신의 케이스를 대신 들린 뒤 총을 장전하고는 적의 기지를 찾아 나섰다.

작 전 계획서에 나와 있는 대로라면 낙하지점으로부터 반경 10Km 이내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을 텐데 헤드기어에 연결 된 센서에는 아무런 신호도 나타나지 않았다. 헬릭은 다목적 로복에게서 자신의 케이스를 받아 등에 짊어지고는 두 개의 로봇을 탐색 모드로 설정한 뒤 적 기지의 위치를 찾도록 하고는 가장 가까운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자신의 키 정도는 넘을 것 같은 두께의 가지에 누워 안전 케이블을 연결하고는 누웠다. 그리고는 아까 못잔 잠을 마저 자기 시작했다.
해가 떠올라 숲의 모습이 헤드기어의 센서를 이용하지 않아도 보일 정도가 되었을 때 헬릭은 눈을 떴다. 다목적 로봇이 무엇인가 발견했다는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헬릭으로부터 북서쪽으로 6km 떨어진 곳이었다. 일단 다목적 로봇을 연결해서 로봇이 발견한 것이 반란군임을 확인한 헬릭은 저격 로봇을 이동시키고 자신도 그 쪽으로 이동했다. 혹 있을지 모를 감지 센서들을 스캔하여 목적지에 도착한 헬릭은 반란군 기지 건물이 내려다보이는 나무 위로 올라가 로봇의 위치를 조정했다. 기지를 무게중심으로 하는 삼각형의 다른 두 꼭지점에 로봇을 배치하고 일단 기지를 관차라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 대의 통신 지원용 차량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차량 한 대 그리고 다섯 대의 다목적 차량으로 구성 되어 있었고 안쪽으로는 조립식 병영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벙커가 설치되어 있었다. 방어 시설들이 눈에 띄지 않았지만 차량 내부에 설치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시험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략의 인원은 40여명 정도로 판단되었고 모두 인간 들이었다. 몇 명은 용병의 분위기를 풍겼지만 대부분은 반정부군의 군인들 같았다. 그 들 역시 호흡용 마스크를 쓴 채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공격을 준비 하는 것도 아니고 정찰 활동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단지 야영을 하고 있는 듯 보일 뿐 이었다. 일단 헬릭은 관찰 내용을 전송하고 음성 채널을 열었다.
(적의 스캔 가능성과 위성의 움직임을 생각해서)

“목표물 발견, 별 다른 행동은 발견되지 않음.”
“수신 데이터 처리 중 잠시 대기 바람.”
헬릭은 대기 명령을 받고 길리슈트를 꺼내 입었다. 외부 섬유가 주변의 패턴을 읽어 변화하는 길리슈트가 어느새 나무껍질의 색과 무늬로 변해 있었다.
대기 하면서 가지 위에 엎드려 계속 관찰하고 있는데 메시지가 도착했다.
“관찰후 특별한 변동 사항이 없으면 공격바람. 첫 공격 이후는 음성채널은 폐쇄하고 그 이외의 채널로 운용. 보안을 위해 통신 접속을 최소화 하길 바람.”
메시지를 확인한 뒤 헬릭은 로봇과의 네트워크 연결을 확인하고는 각 위치에서 적기지 내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2 시간 동안 별 다른 움직임이 보이질 않았다.(상황 설명) 그들은 주변에 적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무기를 휴대하고 다니는 자들고 몇 보이지 않았고 분주히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 때 한명이 가운데로 나와 땅에 무릎을 꿇고 앉아 엎드려 기도 하는 것이 보였다. 헬릭이 용병일 거라고 생각한 자였다.
“이슬람교도 인가?”

그가 신에게 무엇을 기도하는지 그는 궁금해졌다. 그는 자신의 머리에 누군가의 총구가 겨누어져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헬릭은 그의 머리를 겨냥했다가 그만 두었다.
‘이 순간만큼은 당신의 신 보다, 내가 더 당신에게 신과 같은 존재가 되겠군.’
이런 생각을 하며 그는 다른 목표물을 찾았다. 그의 다음 목표는 기도하는 용병 뒤에 멀찍이 서서 손가락질 하며 비웃고 있는 남자였다.
로봇들과 목표물의 위치를 동기화 하고 저격 로봇 쪽에서 발사했다. 총탄은 소리없이 날아가 남자의 손을 날려버렸다. 헬릭의 스코프로 비명을 지르는 남자의 얼굴이 들어왔고 그 주변의 사람들은 갑작스런 공격에 놀라 허둥대고 있었다.
적들이 탄도 추적 장치를 가지고 있을 것을 대비해 “삼점 목표 파괴”를 이용했던 것인데 적은 탄도 추적 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작동 시키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라면 벌써 저격 로봇 쪽으로 공격을 시작했을 것이 분명했다.
비명을 지르는 남자를 지켜보던 헬릭은 탄을 장전하고 남자의 머리를 조준했다. (커스텀 블레이드 시스템) 하지만 그는 발사하지는 못했다. 의무병으로 보이는 자가 남자를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물론 두 명다 죽일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첫 날의 가벼운 인사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날 -
반란군들은 공격을 받고 난 뒤 건물 밖으로 나오는 자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또 나오는 자들도 보호복과 헬멧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경계하고 있었다. 안전한 것이라고 믿었던 공간에서 공격을 받은 사실에 놀라고 또 당황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헬릭은 성급하게 두 번째 사냥감을 해치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는 기다렸다. 그들이 경계를 누그러뜨릴 작은 빈틈을 기다렸다. 그 날 밤 헬릭은 적이 별 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자 나무에서 내려와 기지에서 떨어진 곳의 다른 나무로 이동해 잠을 잤다. 그리고 이틀째 날 아침 그는 적의 움직임을 다시 관찰했다. 밖으로 나온 자들의 수는 다시 많아 졌지만 모두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고 정찰을 나가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물론 그것이 자신을 찾기 위한 정찰병이라는 것을 헬릭은 알고 있었다.
오늘의 제물을 선택해야 할 지 헬릭은 잠시 고민했다. 정찰병들이 움직이고 있는 지금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이 저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고 움직임을 줄일 수 있는 최고의 때라고 생각했다.
결정을 내리고 가지에 엎드려 바이포드(양각대)를 편 뒤 스코프로 목표물을 찾던 그는 다목적 차량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군인을 선택했다. 탄을 장전하고 원거리 저격을 위해 개조한 바렐의 블레이드 시스템을 켜자 총신에 부착되었던 네 개의 기다란 칼날 모양 가이드가 총신 앞으로 회전하며 나갔다. 탄도를 예측해 스코프의 조준점이 이동한 뒤 헬릭은 숨을 내쉬고는 방아쇠를 천천히 당겼다. 이번에는 저번처럼 손을 조준하지는 않았다. 헬멧에 구멍이 뚫린 채 적이 바닥에 쓰러지자 헬릭은 바로 나무를 내려와 정찰병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움직였다. 정찰병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뒤를 조용히 미행하던 그는 정찰병들이 무전을 받고 기지로 돌아가자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갔다.

아 직도 지정된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는 두 대의 로봇을 통해 적 기지의 동태를 확인했다. 돌아온 정찰병들이 이내 2명씩 짝을 지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을 확인한 뒤 헬릭은 다목적 로봇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다. 아마 정찰병들이 다시 정찰을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 날은 그것으로 끝났을 테지만, 자신을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헬릭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 들에게 발각되지 않을 자신은 있었지만 그게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도움을 주지는 않았기 때문에 정찰병들을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라이플을 돌려 매고 나무에서 내려온 헬릭은 북쪽을 향해 사라진 정찰병들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을 발견했을 때 소음기가 부착된 권총을 꺼내 순식간에 둘을 죽이고 시체 하나를 등에 짊어지고 인간형 로봇이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그들에게 정찰이 쓸데없는 일임을 알려주기 위해 시체를 나무에 걸어놓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들은 헬릭의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시체를 발견한 뒤 정찰병의 수는 두 배로 늘어났고 헬릭은 구석에 몰린 쥐처럼 웅크린 채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 숨어있어야 했다. 물론 가만히 적들이 자신을 찾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기지에서 나오거나 들어가는 때를 기다려 선두 혹은 후미의 정찰병들을 저격했다. 사상자가 늘어나자 자연히 정찰병들의 수는 줄어들었지만 정찰 빈도는 점점 늘어났다.

왜 그는 소년병을 쏘는가?

지 난밤 자신을 찾기 위해 움직이는 정찰병들을 피해 계속 위치를 바꾸던 헬릭은 새벽녘이 돼서야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이전과는 다른 날이 밝았다. 매일 아침 시끄럽게 울어대서 그의 선잠을 깨우던 새들도 울지 않았으며, 바람도 불지 않았다. 아마도 일체의 소음이 사라진 아침의 태양이 그를 바꾸어 놨을 것이다. 아니면 나무 위에 둥지에서 마스크를 쓴 채 지속된 매일의 살인이 그를 서서히 미치게 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고 지난밤의 긴장감이 때문에 그가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 날은 그렇게 시작했다. 눈을 뜨자마자 그는 버릇처럼 자신의 라이플에 탄을 장전했고, 또 버릇처럼 스코프를 통해 누군가를 겨누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미쳐있었고, 사고 곡선이 기묘하고 예측 불가능한 선을 그리고 있었으며 위험한 장난과 오늘의 살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제 막 소년티를 벗은 병사 하나가 막사에서 걸어 나와, 나무 위의 저격수가 그를 겨누고 있을 거라는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듯 한 슬픈 얼굴로 하늘을 향해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었다. 이 미친 저격수는 저 어린 병사의 신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생각했다. 그는 방아쇠를 당기면 그 병사의 머리를 박살낼 수 있었고 신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만약 방아쇠를 당겼을 때 신이 저 병사를 구할 수 있는 확률은 어느 정도일지 생각했다. 불발탄이 된다던가, 갑자기 바람이 불어 탄도가 바뀔 확률은 어느 정도가 될 것인지 그리고 자신이 저 병사를 죽인다면 그 순간 자신이 병사의 신보다 위대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또 얼마 전 그가 죽이지 않았던 이슬람교도의 일이 그에게 “넌 말랑말랑한 놈”이라고 손가락질 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너의 신은 지금 네가 아닌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라고 중얼거리며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새들이 울기 시작했으며 바람이 불어왔고 미친 저격수는 정신을 차렸다.

소 년병은 그대로 두 손을 모은 채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고 소년병이 나왔던 막사에서 늙은 남자 하나가 뛰쳐나와 그를 안았다. 헬릭은 그 늙은 남자의 슬픈 얼굴을 바라보며 자신이 저지른 일을 후회했다. 하지만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후 몇 명이 더 나와 둘을 데리고 막사 안으로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철수라도 하는 듯 정리한 뒤 차량에 나누어 타고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헬릭은 그들의 뒤를 쫒아야 할 지 본부에 연락을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결국 그는 사라져가는 적을 바라보며 응답을 기다렸고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 한 참이 지나서야 응답이 왔다.

“잠시 위치를 변경한 것으로 판단됨. 현 위치에서 대기하기 바람”

헬릭의 생각으로는 그들이 다시 돌아올 것 같지 않았지만 다시 연락하지는 않았다. 대신 적을 걱정하지 않고 잠을 잘 수 있다는 생각에 그대로 다시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그가 잠에서 깨어난 것은 구식 수송기의 엔진 소리를 듣고 나서였다. 혹 이동했던 적이 다시 돌아온 것은 아닌가하여 센서들을 모두 가동해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수송기의 엔진 소리도 멀어져 갔다.
“그냥 지나가는 건가?”
수송기가 멀어지고 나서 헬릭이 로봇들과 연결해 주변을 관찰했다. 그런데 저격로봇의 음향탐지 센서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파형이 수집된 파형과는 다른 패턴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음향 센서를 주시했다.
‘동물 소리인가?’
처음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그 소리가 간헐적으로 계속되자 로봇을 움직여 주위를 관찰했다. 하지만 다른 센서들에서는 별 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았는데 한 순간 카메라가 비춘 곳이 아주 약간 일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출렁였다고 하는 게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옷자락 같은 것이 바람에 움직이듯 그렇게 나뭇가지와 잎 사이가 묘하게 일그러졌던 것이다. 그것은 눈의 피로 때문에 느끼는 증상과 비슷했지만 그 일렁이는 모습에서 인공적인 것이 느껴졌기 때문에 헬릭은 그것을 지나치지 않았다. 자신이 입고 있는 것과 비슷한 길리슈트를 입은 무엇인가가 저곳에 있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만약 저게 적이라면 방금 전의 수송기로부터 온 것이겠군.’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조심해야 했다. 적이 위치를 이동하고 이 지역에서 자신들의 작전을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 방해하는 존재를 제거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투입 했을 거라는 생각과 단지 피곤함 때문에 민감해진 것이라는 두 가지 생각이 충돌했지만 결국 그는 자신을 노리는 새로운 적의 출현이라는 쪽에 손을 들어 주었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도 없었고 헬릭의 생각대로 자신을 노리는 존재가 있다고 하더라도 섣불리 움직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헬릭은 로봇들의 센서만 작동 시키고 길리슈트를 뒤집어 쓴 채 나뭇가지에 엎드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 적을 확인하고 요리할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그게 최선의 방법일거라고 생각했다.

딱따구리(woodpecker)
센서들의 움직임을 주시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곧 날이 밝으려는지 주변이 희뿌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라이플이 손잡이를 잡은 채 엎드려 있던 헬릭이 주변에서 이상한 기척을 느낀 순간 멀리서 나지막이 소리가 들려왔다. 규칙적으로 나뭇가지 같은 것을 두드리는 소리 같았다. 마치 딱따구리가 부리로 나무를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는 일정 시간 들려오다 잠시 멈추고 다시 위치가 바뀌어 들려왔다.
‘확실히 다른 자들이 이곳에 와 있는 모양이군. 그런데 뭐지 저 소리는?’
괴상한 소리 때문에 헬릭이 나뭇가지에 일어나 앉아 라이플 스코프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살펴보았다. 북쪽에서 들려오는 것 같던 소리는 잠시 멈추었다 동쪽에서 들려오기도 하고 다시 서쪽에서 들려오기도 했다. 종잡을 수 없는 소리 때문에 총구가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여전히 소리의 정체는 찾을 수 없었다. 헬릭이 이렇게 소리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주변을 탐색하는 동안, 소리는 가까워졌고 그것이 나뭇가지를 두드리는 소리가 아닌 다른 종류의 소리이며 진원지의 위치가 상하로도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에 헬릭의 위치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 들린 소리는 이내 멈추더니 다시 들리지 않았다.
‘어디지?’
다급해진 헬릭이 천천히 엎드려 HUD를 살피려는 순간 바로 밑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헬릭이 총구를 아래로 내리고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려는 순간 헬릭의 시선을 피해 나무 뒤 쪽으로 움직였다.
‘로봇인가?’
움직임이 너무 빨라 제대로 확인 할 수는 없었지만 생물의 움직임은 아니었다. 헬릭은 몸을 돌려 양쪽을 번갈아 확인 했으나 그것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더니 바로 발밑에서 진동과 함께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헬릭이 발아래를 향해 총을 쏘고 나뭇가지 끝으로 이동하자 회전음이 들리는 것 같더니 나뭇가지가 잘려 바닥으로 떨어졌고 헬릭은 안전 케이블에 의지해 거꾸로 매달린 채 소리의 정체를 확인 할 수 있었다. 길이 1미터 정도의 네 개의 다리를 단 로봇의 어두운 붉은색 센스가 헬릭을 노려보고 있었다. 헬릭에게 들렸던 소리는 끝이 날카로운 네 개의 다리로 나무를 찍으며 이동하기 때문에 난 소리 같았다. 로봇은 나뭇가지가 잘려나간 부분으로 그 특유의 소리를 내며 이동하더니 안전 케이블이 달려 있는 나뭇가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헬 릭은 떨어지면서 놓쳤던 라이플에 달린 연결 와이어를 잡아 당겨 안전 케이블을 향해 다가오는 로봇을 쏘았다. 하지만 방탄 처리가 되어 있는지 몸에 닿은 탄환은 작은 불꽃만 일으켰을 뿐 로봇의 움직임을 멈추지 못했다. 총알이 소용없자 헬릭을 몸을 돌려 로봇이 안전케이블을 자르기 전에 나뭇가지를 올라가야 했다. 귀를 괴롭히는 로봇의 소리를 들으며 케이블을 타고 막 나뭇가지 위로 올라선 순간 코 앞 까지 와 있던 로봇에게서 다시 회전음이 들리더니 옆구리에서 둥근 톱이 나와 다시 나뭇가지를 자르기 시작했다. 헬릭은 허리춤에 연결된 안전 고리를 떼어내고 달려 로봇을 뛰어넘었다. 잘려나가던 가지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커다란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헬릭이 총구를 센서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이 낸 불꽃과 함께 네 개의 칼날이 센서를 뚫고 들어가는 것 같더니 로봇이 작은 스파크를 일으키며 정지했다. 헬릭은 로봇이 정지 한 것을 확인하고는 숨을 돌리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아직도 나무에 다리를 박고 있는 로봇을 발로 밀어내려는 순간, 이번에는 동시에 여러 곳에서 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전과 달리 소리들이 헬릭이 있는 쪽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각 각의 유닛들이 연결되어 방금 부서진 로봇의 위치나 마지막 전투 정보를 토대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날이 많이 밝아 주변의 상황을 어느 정도는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상태였다. 헬릭은 자신이 다 수의 로봇에 의해 포위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지상으로 내려가는 대신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을 선택했다.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는 로봇의 날카로운 다리에 등을 찔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헬릭이 거의 나무 꼭대기 까지 올라갔을 때 조금씩 자신 쪽으로 접근해 오는 로봇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대충 세어보았을 때도 약 7기에서 10기 정도인 것 같았다. 헬릭은 일단 눈에 띄는 놈들의 센서를 조준해 공격했지만 워낙 빠르게 움직여서 그것이 쉽지 않았다. 20발들이 탄창 하나를 다 쓰고 나서야 헬릭이 있는 나무를 오르던 두 기의 로봇을 해치울 수 있었다. 흩어져 있는 자신의 저격로봇들을 이동시키면 훨씬 쉽게 해치울 수 있을 테지만 최후의 순간에 전자 장비 교란용 채프(chaff)를 사용할 셈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다시 2기를 더 해치우고 탄창을 교환하는 사이 나머지 7기의 로봇이 나무를 기어오르다 멈추어섰다.
‘뭐지’
로봇들이 멈추어 선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그것은 로봇들이 내는 소리보다 가볍고 주기가 더 짧았다. 뭔가 다른 존재의 등장에 헬릭이 교란용 채프를 꺼내 들었는데 건너편의 나뭇가지 위로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다. 검은색 전투용 슈트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양 손에 단검을 든 상대는 나뭇가지위에 올라서서 손에 들고 있는 단검으로 나무를 찍어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단검의 내부가 비어있는지 꽤 맑은 소리가 울렸다. 적을 발견하고 헬릭이 총을 겨눈 순간 아래에 멈추어 서 있던 로봇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나무를 타고 올라오는 대신 중간에 멈추어 나무 주위를 둘러싸고는 회전톱으로 나무를 자르기 시작했다.
‘통 채로 쓰러뜨릴 생각이군.’
나무가 쓰러지기 전에 로봇들을 멈추어야 했지만 지금 교란용 채프를 터뜨리면 적이 로봇 만이 아닌 상황에서 자신의 전투용 센서가 먹통이 될 것이 분명했다. 헬릭은 일단 로봇들을 처리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아래의 로봇들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다행히 나무를 쓰러뜨리기 위해 멈추어 있는 상태여서 손쉽게 2기를 파괴하고 반대쪽의 로봇들을 공격하기 위해 몸을 돌리는데 뭔가 반짝이는 것이 헬릭의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가더니 나무에 작은 소리를 내며 박혔다. 날아온 그것은 손가락 길이만 한 작은 칼날이었는데 건너편의 상대로부터 날아온 것이었다. 날아오는 칼날을 피해 몸을 피한 순간 나무가 벌써 조금 기울어졌다. 나무를 쓰러뜨리기 위해 나무를 파고 들어간 로봇하나가 쓰러지는 나무에 눌려 부서졌는지 부스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기울어지는 것이 멈췄다. 하지만 다른 로봇이 조금 만 더 파고 들어가면 그대로 넘어질 것이 분명했다.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헬릭은 교란용 채프의 안전핀을 뽑고 아래로 던진 후에 적의 시야를 피해 나무를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지상에서 폭발한 채프의 금속조각들이 막 떠오르기 시작한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날리자 로봇들의 움직임이 멈추었고 헬릭의 전자장비들도 소음과 함께 작동을 멈추었다. 거의 절 반 정도 내려왔을 때 어느 새 나무 밑으로 이동한 검은 슈트의 적이 단검과 신발에 달린 스파이크를 이용해 빠른 속도로 나무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직접 상대할 작정인 것 같았다. 적의 움직임을 확인한 헬릭이 내려가는 것을 멈추고 가까운 가지에 올라서 상대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는데 잔탄이 남아있지 않았다. 지금껏 잔 탄량을 기억하지 못한 적이 없었는데 처음 있는 일에 그는 조금 당황했다. 아까 넣었던 탄창에 탄을 가득 채우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상대가 나무를 오르는 속도를 봤을 때 새 탄창으로 교환할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아 헬릭은 대신 라이플의 블레이드를 뽑아 고정하고 나뭇가지 끝으로 조금 물러났다. 곧이어 가지 위로 올라온 적은 양 손의 단검을 세워 헬릭을 겨누며 말했다.
“아저씨 목에 걸린 돈이 상당해!”
입을 가린 마스크 사이로 새어나온 목소리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헬릭 역시 라이플을 창처럼 블레이드가 달린 끝이 아래를 향하도록 양 손으로 들고 남자에게 말했다.
“돈은 잊어버리는 게 좋을 거야. 여기서 죽을 테니까.”
헬릭의 말에 남자의 마스크 위로 보인 눈에서 차가운 웃음이 흘렀다. 그리고 바로 헬릭을 향해 공격해 들어왔다. 상대는 평형감각이 뛰어난 지 넓지 않은 가지 위에서도 마치 평지에서 움직이듯 빠르게 움직였고 헬릭은 적의 공격을 라이플로 가까스로 막은 채 천천히 가지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가지 위에서의 대결 때문인지 나무가 다시 기울어지며 천둥소리 같은 소리를 내는 순간 남자의 오른손이 헬릭의 왼쪽 옆구리를 향해 날아왔고 헬릭이 치켜들었던 라이플로 남자의 팔을 찍어 내렸다. 목 깊은 곳에서의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네 개의 기다란 칼날이 남자의 팔꿈치 아래를 뚫고 들어가 바닥의 가지에 박혔고, 바로 뒤이어 남자의 왼손이 헬릭의 얼굴 앞으로 큰 반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헬릭이 그것을 피하기 위해 라이플을 쥐고 있던 손을 놓고 뒤로 물러서자 남자가 가지에 박혀있는 팔을 그대로 칼날 위로 끌어올려 단검과 함께 총신을 쥐고는 라이플을 뽑아냈다. 헬릭이 라이플을 되찾기 위해 연결되어 있는 와이어를 당겨 보았지만 상대의 완력도 만만치 않아 두 사람은 마치 외나무다리 위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모양이 되었다.
팽팽한 줄을 가운데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사이 나무가 귀신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두 사람 모두에게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우리 모두 한 쪽 팔이 묶여있으니 단검으로 빨리 해결하지. 이러고 있다간 둘 다 죽을지 모르니까.”
헬릭이 이렇게 말하자 남자가 날카로운 눈으로 헬릭을 노려보다가 왼손에 들고 있던 단검을 헬릭에게 던지고 총신과 함께 단단히 쥐고 있던 단검을 왼손에 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와이어를 잡아당기며 천천히 다가섰다. 두 사람의 거리가 1미터 정도로 가까워지자 남자가 오른손으로 와이어를 잡아당기며 왼손으로 헬릭의 목을 노려 단검을 휘둘렀고 헬릭이 그것을 숙여 피하자 이번에는 아래에서 남자의 스파이크가 가슴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것을 와이어에 연결된 오른손으로 가까스로 막고 상체를 세우며 뒤로 물러서는 순간 남자의 단검이 이마를 살짝 스쳤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뺨을 따고 흘러내릴 참도 주지 않고 이번에는 헬릭이 오른손으로 와이어를 잡아당기는 것 같더니 바로 힘을 풀고 상대를 향해 뛰어올랐다. 왼손의 단검은 상대의 심장을 향하는 것 같더니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려갔고 헬릭의 두 손은 라이플을 잡고 있었다. 헬릭은 두 손으로 라이플을 잡아 바닥에 더 깊게 박았고 그와 동시에 남자의 왼손에 들린 칼날이 헬릭의 어깨를 깊게 찔렸다. 하지만 헬릭은 신음도 내지 않고 오른손의 와이어를 남자의 목에 감고 번지 점프라도 하듯 아래로 뛰어내렸다. 남자의 몸이 와이어와 함께 휘청 이더니 이내 와이어와 함께 매달린 헬릭 앞으로 부릅뜬 두 눈으로 헬릭을 노려보고 있는 남자의 머리가 잘려 떨어졌다. 그리고 뒤이어 남자의 몸에서 솟구친 피가 와이어와 가지를 타고 헬릭에게 쏟아졌다. 헬릭은 와이어를 잡고 가지 위로 올라목없는 시체와 함께 가지에 박혀 있는 라이플을 뽑아내 등에 매고 나무를 내려왔다. 아직도 어깨에 단검이 박혀있었지만 그것을 뽑아낼 시간이 없었다. 채프의 효과 지속 시간이 다 됐는지 헬릭의 센서들이 하나 둘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까스로 나무에 내려 온 순간 로봇들의 회전톱 소리와 함께 나무가 천천히 기울기 시작했다. 헬릭은 바닥에 떨어진 남자의 머리를 다시 바라보았다. 이제 두 눈은 감겨 있었지만 아직도 잠시 전 그가 보았던 모습이 남아 있는 것 같아 바로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쓰러지는 나무를 피해 멀리 달리기 시작했다.

푸른 연기 (Blue Smoke)
적을 해치운 뒤 헬릭은 자신의 장비 케이스를 놓아두었던 나무에 가서 자동소총과 탄을 보충하고 다친 어깨에 응급조치를 한 뒤 케이스를 매고 쓰러진 나무 근처의 다른 나무위로 올라갔다. 자신을 노리는 적이 더 있다면 아마도 쓰러진 나무 근처로 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주변이 잘 보이는 나무 가지 위에 엎드려 길리슈트를 뒤집어쓰고 혹시 나타날지 모를 적을 기다렸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금방 나타날 줄 알았던 적은 정오가 지나가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그 놈 뿐이었나? 아니면 아까 내가 다른 장비를 챙기느라 자리를 비웠을 때 왔던 건가? 다른 놈들이 있었다면 아까 놈이 죽기 전에 나타나 도와줬을 텐데, 그러지 않은 것을 보면 역시 한 명뿐 이었던 것일까? 아냐, 돈을 위해 온 자들이라면 서로를 경쟁자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헬릭이 이런 생각들을 하며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르는 적을 기다리는데 본부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현재 상황에 대해 논의 했으나 작전 성공을 위해 현 위치에서 대기하기로 결정됨.’
아까 본부에 상황을 보고하고 나서 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역시 본부에서의 연락은 헬릭의 짐작대로였다.
“뭐 휴가처럼 생각하고 쉬고 오라고? 이런 휴가라면 네 놈이나 실컷 즐기시지.”
헬릭이 로만이 출발하기 전에 했던 말을 생각하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급히 지혈을 하고 진통제를 먹긴 했지만 어깨의 통증은 움직일 때마다 그를 괴롭히고 있어 휴가라는 말과는 굉장히 거리가 먼 상황에 그는 놓여 있었다.
헬릭이 어깨의 통증을 누그러뜨릴 셈으로 상처를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가 주머니에서 진통제통을 꺼내 입에 떨어 넣고 씹었다. 생각보다 쓰고 떫은맛이 심해 헬릭이 앤이 줬던 초콜릿을 생각하고 그것을 조금 꺼내 먹으려고 조끼 주머니를 뒤지다가 문득 나무 아래에 안개 같은 것이 끼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기어를 통해 주위를 살펴보았다. 언제부턴가 지상에 푸른빛을 띠는 연기인지 안개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점점 퍼져 올라오고 있었다.
아직까지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아 단순한 안개라고 생각했지만 생화학무기의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생화학진단 키트를 꺼내 확인했다. 결과는 생화학무기가 아닐 가능성이 98% 인 것으로 나왔지만 그 푸른빛이 수상쩍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테스트를 해본 뒤에야 조금 안심하고는 안개인지 연기인지 알 수 없는 것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러는 사이 연기는 점차 퍼져 헬릭이 있는 곳 부근까지 올라왔다.
‘본부에 보고하고 이 지역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인지 알아봐야겠군.’
이렇게 생각하고 본부에 메시지를 보낸 뒤 답변을 기다리는데 왠지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진통제를 먹어서 그런가 하고 그냥 지나쳤는데 그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마른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이거 아무래도 생화학 무기인 것 같은데.’
그 때 본부로부터 연락이 도착했다.
“지역 내에서 그런 현상에 대해 보고된 적이 없음. 생화학무기의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하기 바람.”
“젠장!”
메시지를 확인한 헬릭이 급히 주머니를 뒤져 해독키트를 찾는데 메스껍고 시야가 좁아진 것이 느껴졌다. 그제야 뭔가 생각난 헬릭이 자신의 마스크를 벗어 확인했다. 필터와 혼합부가 망가져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았다.
‘산소 중독이군. 저 푸른색 연기 때문인가.’
헬릭은 이렇게 생각하고 일어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마스크를 교체했다. 하지만 새로 교체한 마스크도 얼마나 버텨줄지 몰랐기 때문에 일단 푸른 연기를 피해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연기가 계속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헬릭이 있는 곳으로 서서히 올라오던 연기가 뭉쳐 지름 1미터 정도의 구체가 되는 듯싶더니 이내 뱀처럼 긴 원통모양으로 변해 헬릭이 있는 나무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나노머신이었군.”
그제야 헬릭은 그 푸른 연기의 정체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나노머신의 구름이었고 그것이 헬릭의 마스크를 망가뜨린 것이었다. 그 나노머신들의 또 어떤 기능들을 가지고 있는 지 알 수 없었지만 다행히 마스크만 망가뜨린 것 같았다.
뱀 모양으로 변한 나노머신들은 나무 위를 빠른 속도로 올라오더니 헬릭 바로 밑에서 연기처럼 퍼져나갔다. 이렇게 된 이상 저 푸른 연기를 피해 아래로 빨리 내려가거나 다른 나무로 옮겨 가는 수밖에 없었다. 주변을 살피던 헬릭은 가장 가까운 곳에 보이는 다른 나무의 가지로 뛰어 넘어가기로 하고 가지 위에서 도움닫기를 했다. 간신히 헬릭이 옆 나무의 가지를 잡고 위로 올라갔을 때 레이저 무기가 가지를 잘라냈고 헬릭은 아래로 떨어지다 간신히 다른 가지를 잡고 올라왔다. 하지만 그 곳은 푸른 연기의 한가운데였다. 새로 바꾼 마스크는 금세 망가졌고 헬릭은 그것을 뺀 채 푸른 연기를 피해 도망치며 레이저 무기가 발사된 곳을 살펴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반란군 군복 차림의 남자가 레이저 발사기를 들고 그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이내 또 레이저가 헬릭의 눈앞에서 나타나더니 가지를 잘랐다. 가지가 잘리기 전에 다른 가지로 넘어가 상대를 향해 자동 소총을 쏘았는데 시야도 좁아지고 메스꺼움도 심해져서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산소 중독의 증상이 폭발하기 전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떻게 해서든 아래도 내려가 저 자를 죽이고 저자의 호흡용 마스크를 뺏는 수밖에 없겠군.’
헬릭이 이렇게 생각하고 나무를 타고 아래로 내오는 순간에도 푸른 연기는 헬릭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고 레이저 무기를 든 적은 헬릭의 모습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네가 그 시끄러운 놈을 죽였나보더군. 아까 저 쪽에서 놈의 머리를 발견했어.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고 있던데.”
헬릭이 나무를 내려오는 사이 적이 소리쳤다. 아마도 그 머리가 눈을 부릅뜨고 있다는 말은 거짓말일 것이라고 헬릭은 생각했다.
“나 하나를 잡으려도 몇 명이나 보낸 거지? 돈에 미쳐서 죽을지 모르고 날아든 하루살이가 몇이나 되는지 궁금하군.”
헬릭이 바닥에 내려와 나무를 등지고 이렇게 소리치자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글쎄 몇 명이나 될까? 자네 실력만큼의 수가 와 있겠지. 아니면 자네가 죽인 아군의 숫자 만큼이거나. 누가 알겠어?”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위치가 변하고 있었다. 헬릭의 옆으로 이동하는 것 같았다. 헬릭은 자동 소총으로 위협사격을 하며 다가오고 있는 푸른 연기를 피해 움직였고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적의 레이저가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피한 헬릭의 총이 상대의 무릎을 부쉈다. 적이 중심을 잃는 것과 동시에 헬릭은 레이저 무기와 함께 그것을 들고 있는 그의 손을 쏘고 달려가 그의 얼굴에 총을 들이대고 말했다. 총에 맞아 부서진 레이저 무기 함께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자 네 입에 있었던 것을 쓰고 싶지 않으니까 어서 다른 마스크가 있으면 내놔.”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어차피 저 나노 머신들 때문에 금방 필요가 없을 텐데.”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얼굴이 고통 섞인 미소로 일그러졌다.
“그럴 테지 하지만 네 마스크는 전혀 망가지지 않은 것을 보면 뭔가 너한테 저것들에게 신호를 보내는 장치 같은 게 있을 거고 네게서 그것을 뺏는다면 괜찮겠지.”
남자의 얼굴이 헬릭의 말을 듣는 순간 더욱 일그러졌다. 헬릭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남자의 어깨에 매달린 조그만 사각형의 장치를 떼어내 자신의 어깨에 붙이고 남자의 입에서 마스크를 떼어낸 뒤 말했다.
“자 이제 곧 있으면 죽게 될 테니 나를 노리는 다른 놈들이 있다면 불러내는 게 좋을거야.”
“귀찮은 놈이군. 그 대답은 아까 했을 텐데.”
“그런가.”
남자의 대답을 기다리던 헬릭은 이렇게 말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죽은 남자의 몸 위로 헬릭을 괴롭히던 푸른 연기가 모여들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마치 묘지 위의 안개처럼 머물러 있을 뿐 헬릭의 마스크를 부서뜨리지는 않았다.

야수 사냥꾼
산소 중독에 의한 후유증으로 몸이 좋지 않았지만 헬릭은 다시 주위에서 다른 적을 기다렸다. 대체 몇이나 될지 그리고 지금까지 나타난 자들을 봤을 때 어떤 공격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초조하게 기다리는 동안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야간용 센서들이 작동하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뭔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는 소리 같았다. 헬릭이 뭔가 하고 스코프로 소리의 진원지 쪽을 살펴보는데 이어 총소리가 들려왔다. 저격용 라이플의 소리였다.
‘저 총소리는 또 뭐지.’
헬릭이 엎드려 상황을 살리는 사이 그 커다란 소리는 점차 가까워 졌고 헬릭의 스코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조금 오래된 전차였다. 커다란 크기의 포탑과 함께 여섯 개의 바퀴 달린 다리 뒤로는 트레일러가 두 개와 커다란 연료탱크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그 전차는 헬릭이 있는 방향으로 다가오는 듯싶더니 멈추어 섰다.
“적인가?”
헬릭이 적의 정체를 살피느라 망설이는 사이 스피커에서 처음 듣는 오래된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포탑의 해치가 열리고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헬릭이 나무뿌리와 땅 사이에 생긴 구멍에 몸을 숨긴 채 남자의 머리를 조준한 순간 남자의 시선이 헬릭과 마주쳤다.
‘들켰나?’
헬릭이 놀라 방아쇠를 당길지 말지 고민하는 데 남자가 소리쳤다.
“이봐 저격수 친구. 이리 오라고! 자네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왔으니까. 그렇게 엎드려 있지 말고 빨리 달려와. 저 쪽에 있는 다른 저격수가 이쪽으로 오고 있을지 모르니까.”
본부로부터 이런 일에 대해 연락을 받은 일이 없어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지만 일단 일어서서 전차 쪽으로 달려갔다. 헬릭이 모습을 드러내자 남자는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봐 내 말이 맞지 내 육감은 틀린 적이 없다니까.”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는지 해치 아래에 대고 남자가 이렇게 소리쳤다. 헬릭이 전차에 오르자 남자는 해치를 닫고 헬릭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고생이 심했던 모양이구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헬릭이 대답대신 이렇게 묻자 남자가 말했다.
“연락 받지 못했나? 어이 이봐 그 장교 이름이 유진 레우야였던가? 암튼 그 친구가 자네를 만나면 데리고 나오라고 하더군.”
“아까까지만 해도 대기하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그 연락은 언제 받으신 겁니까.”
“출발하기 전이니까 이틀 전이지. 그 장교 말로는 자네 작전에서 제외됐는데 아무래도 자네를 이곳에 버려둘 것 같다는 거야. 그래서 착한 일 좀 하기로 했지.”
“그렇군요.”
헬릭은 아직 자세한 상황은 몰랐지만 대충은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곳에 저격수 한 명을 보낸 것부터가 석연치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이름도 묻지 않았군. 난 죠 라고 하고 저기 조종석에 앉아 있는 친구는 요셉이네.”
“헬릭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헬릭이 이름을 말하자 조종석에 앉아 있던 요셉이란 친구가 고개를 돌려 헬릭을 바라보며 미소띤 얼굴로 인사했다.
“저 쪽에 앉아서 편히 쉬라고. 이 놈 튼튼해서 총알 같은 건 들어오지 못하니까 말이야”
죠가 이렇게 말하며 한쪽의 의자를 가리켰다. 헬릭은 라이플을 한 쪽에 세워놓고 의자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차의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는데 아무래도 여러 가지 전자장비들은 다 떼어낸 것 같아보였다. 주변을 살피던 헬릭이 뭔가 생각났는지 요셉 옆에서 전방을 살피고 있던 죠에게 물었다.
“그런데 뭐하시는 분들입니까? 이런 것을 끌고 다니시는 것을 보니 궁금해지는 군요.”
“아! 우리도 자네랑 비슷하네. 사냥꾼이지. 뭐 우리가 야수들을 쫓아다니는 것 정도가 차이점일거야.”
사냥꾼이라는 말에 헬릭이 말했다.
“아무리 사냥꾼이라도 그 육감은 대단한데요. 잘 숨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헬릭의 말에 죠가 수염을 만지며 커다란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그럼 여기 딱 들어서는 순간 알았지. 여기에 사냥꾼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걸 말야.”
“그런데 사냥은 끝나신 겁니까?”
“아니 이제 시작하려는 참일세. 그러고 보니 사냥이 끝나려면 좀 걸릴 것 같으니 돌아갈 때 까지 좀 기다려야 할 걸세. 아 그리고 배고프거든 뒤쪽 트레일러에 가서 찾아 먹으라고.”
“감사합니다.”
헬릭은 이렇게 말하고는 의자에 앉아 자신이 챙기지 않은 두 저격 로봇을 연결해 자신 쪽으로 이동할 것을 명령했다. 물론 자신이 놓고 온 장비들을 챙겨 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뒤 쪽에 매달린 트레일러에 들어가 배를 채운 헬릭이 어깨의 상처를 치료하고 다시 의자에 앉았을 때는 자정이 다 된 시간이었다. 의자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움직이던 전차가 멈추더니 적외선 탐지 장치를 바라보던 죠가 요셉에게 말했다.
“오아시스에 도착했으니 일단 오늘은 여기서 쉬자고.”
요셉이 고개를 끄덕이고 엔진을 끄자 전차가 아래로 조금 가라앉는 것 같더니 바닥에 닿았다. 죠는 헬릭 앞의 의자에 앉았고 조종석에서 일어난 요셉도 자동 방어 장치의 스위치를 올리고 뒤 쪽으로 왔다. 두 사람은 헬릭을 잠시 서로 바라보며 눈으로 뭔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더니 잠시 후 요셉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여기 있었다던 반란군들은 어떻게 됐죠?”
요셉의 물음에 눈을 감고 있던 헬릭이 눈을 떠 두 사람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어디 론가로 사라졌지요. 본부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이 있어서 따라가지는 못했습니다.”
“아!”
헬릭의 말을 듣고 있던 죠가 다행이라는 듯 이렇게 탄성을 내지르더니 다시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 봐! 자네는 우리가 뭘 잡으려고 하는지 궁금하지 않나?”
“야수 사냥꾼이라고 하셨으니 야수겠지요. 이런 전차까지 준비하신걸 보면 꽤 큰 놈이겠군요.”
헬릭의 말에 죠와 요셉은 뭐가 재미있는지 서로를 바라보며 웃다가 말했다.
“자네 그 반란군들이 왜 여기 와 있었는지 까지는 모르는구먼. 우리가 잡으려는 게 그 반란군이 잡으려는 것과 같은 것이라네.”
“네?”
헬릭이 알아듣지 못하고 이렇게 되묻자 죠가 꽤 긴 이야기가 될 것이라 것을 예고하는 듯 짧은 기침과 함께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이미 이야기 했듯 요셉과 나는 우주를 떠돌며 야수들을 사냥해 동물원이나 애호가들에게 파는 야수 사냥꾼이라네. 뭐 옛날에는 그저 평범한 우주 식민역사학도였지만 말일세. 어쨌든 지금부터 내가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주지. 자네도 알고 있다 시피 이 곳은 지구의 우주 식민 계획의 초기 계획 모델에 포함된 행성일세. 그 우주 식민 계획은 계속 모델이 발전해 현재는 그렇지 않지만 그 초기의 몇 몇 모델에는 단순한 식민 계획뿐 아니라 괴상한 실험이 같이 포함 되어 있었지. 그러한 실험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이 행성 역시 그런 실험이 포함되었고 그것이 이주 초기에 실행되었네. 그 실험이 무엇이었냐 하면 말이지. 바로 집단의식에 의한 실체화라는 실험이었네.”
“뭔가 대단한 이름이군요.”
헬릭이 말하자 죠가 미소지었다.
“그렇지! 그런데 그게 어떤 실험인지 안다면 더 놀랄 걸세. 과학자들은 이주민들을 이주시키면서 그들 사이에 이야기 하나를 퍼뜨렸다네. 그들이 이주해 갈 곳에는 지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신과 같은 존재가 있다고 말이지. 물론 사람들이 그 말을 곧이 곧 대로 믿었을 리 없지. 그래서 과학자들은 몇 몇의 기억을 조작해 자신이 직접 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이주민 무리에 끼워 넣은 거야. 그러자 처음에는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점차 그럴 수 있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그것을 직접 봤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나타나게 된 거야. 그러자 사람들은 어느새 그 존재에 대해 신격화하기 시작했고 이전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행성에 신화가 생기게 된 걸세. 물론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을 아는 것은 몇 몇 과학자들뿐이었지. 실험이 진행되자 과학자들은 처음 이 행성에서 환경 조성 작업을 시작했던 거대한 지역을 성스러운 지역으로 만들고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지.”
“그 성스러운 지역이 바로 마르스의 묘지군요! 그렇다면 저 거대한 나무들이 산소 공급을 위한 유전자 조작 식물들이었군요.“
“맞네. 다른 곳에서는 대부분 사라졌지만 이 행성은 성스러운 곳으로 만들어 놓은 덕분에 저렇게 남아 있는 거지 그래서 이 별에 이주해 온 사람들은 이곳에 오는 것을 금지하고 있고 말이지. 웃기지 않나. 말장난 같은 실험 때문에 말이야. 뭐 어쨌든 그 때까지만 해도 실험은 과학자들이 계획했던 대로 진행됐다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곳에서 태어난 세대들이 성인이 되었을 즈음해서 과학자들도 짐작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네. 그 들이 지어냈던 존재가 진짜로 나타난 것일세!”
“네? 그건 실험일 뿐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맞네. 처음에는 그랬지. 그런데 말일세. 어찌된 일인지 그 존재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뿐 아니라 실제로 현실 공간에서 실체화 하게 된 것일세. 과학자들은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어 연구를 계속했네. 그리고 결국에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실험 노트의 마지막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생각해 냈던 존재가 실체화 했다.’ 라고 적어 놓게 된 걸세. 믿기 힘든 일이지? 나도 처음에 도서관의 한 쪽 구석에서 그 실험노트를 보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었네.”
이야기를 다 들은 헬릭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죠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한 존재의 정체가 단지 실험에서 등장하는 상상의 존재라는 사실을 어찌 쉽게 믿을 수 있겠나. 그 날 이후 난 우주의 모든 존재에 대해 의심하게 되었다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자신의 왼쪽 바지를 걷어 올렸다. 그 곳에는 금속 재질의 의족이 털이 잔뜩 난 종아리 대신에 달려 있었다.
“내가 8살 때 그 놈 덕분에 이렇게 되었다네. 난 다리를 잃었을 뿐이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럼 그 것을 잡으시려는 겁니까?”
“그렇지. 하지만 복수심에서 만은 아닐세. 그 과학자들의 실험이 탄생시킨 존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 서지.”
“그건 또 무슨 이야기 입니까?”
헬릭이 묻자 방금 전까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던 죠의 얼굴이 굳었다. 그리고 이내 비장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과학자들이 퍼뜨린 이야기 속에는 그 것의 심장을 가진 자의 군대는 어떠한 전쟁에서도 승리한다는 이야기가 포함 되어 있다네.”
헬릭은 그제야 왜 반란군들이 이곳에 주둔해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실행에 옮긴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럼. 당신들이 잡으려고 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입니까?”
헬릭이 이렇게 묻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요셉이 말했다.
“사실 우리는 그것을 생포하려고 했지만 우리의 스폰서인 정부 측에서는 심장을 원하는 것 같더군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군요.”
이야기를 다 듣고 헬릭이 쓴 웃음을 짓자 죠가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겠나? 자네 같은 사람이라면 분명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말일세.”
죠의 말에 헬릭은 잠시 생각했다. 어차피 그들과 함께 행동을 하기로 했으니 거절할만한 핑계도 없었고 또 그 존재라는 것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도와드리죠.”
“고맙네.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런데 그 요상한 존재의 정체가 뭡니까?”
“아! 그 놈 말인가? 여우라네… 집채만 한 크기의 거대한 여우! 우리들은 모래여우라고 부르지. 그 숨결과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모래로 변하는 놈이거든. 내 다리 역시 그 놈 덕분에 사막의 모래가 되었지. 하하하”
헬릭은 유쾌한 듯 웃고 있는 죠의 눈에서 잠시 형용할 수 없는 깊고 어두운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복수심과 살의 그리고 검은 호기심이 뭉친 어두운 그림자임에 분명했다.

모래여우
“그 놈을 어떻게 잡으실 겁니까?”
헬릭이 죠가 말하는 모래여우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떻게 잡을지 궁금해 묻자 요셉이 주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포로 물을 쏠 겁니다. 시한 탄두 내부에 물을 넣어서 먼 거리에서 놈에게 물세례를 주는 것이죠.”
“생각했던 것보다는 단순한 작전이군요.“
헬릭이 이렇게 말하자 죠가 말했다.
“그런가? 하지만 이 작전은 벌써 20년 전부터 시작된 작전이라고. 게다가 저 반란군들도 아마 이와 비슷한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걸.”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하하, 내가 말했잖아. 원래 존재하지 않던 것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그래서 그 놈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에 대한 방법 따위도 존재하지 않지. 그런데 이걸 뒤집어 본다면 누군가 그 놈을 잡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퍼뜨려 사람들이 믿게 되고 그 수가 많아진다면 실제로 그렇게 나타나게 된 놈에게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지. 그래서 나는 20년 전에 책을 몇 권 썼다네. 몇 권은 동화책 이었고 몇 권은 설화집이었지. 그 곳에 나는 놈의 몸은 물에 닿으면 녹아내리기 때문에 언제나 사막에 있고 지구의 불사조 이야기를 빌려와 놈의 수명이 다하면 오아시스로 걸어 들어가 죽은 뒤 새롭게 태어나 걸어 나온다는 이야기와 그 주기가 10년이라고 꾸며냈다네. 또 새롭게 태어난 놈은 약해서 쉽게 잡을 수 있고 예전에 누군가 그렇게 해서 잡았다는 이야기도 끼워 넣었지.”
죠의 말을 다 듣고 헬릭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너무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웃긴가? 그런데 내가 그 쓴 책에 속은 사람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나서 말이야. 책 출판 이 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다 자란 지금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알고 있게 되었다네. 반란군들 역시 그 이야기를 알고 있기 때문에 여기 오게 된 거고.”
“그럼, 반란군들도 사막여우를 잡기 위해 이곳에 나타나겠군요? 그 자들과 교전이 있을 텐데요.”
“아마 자네 덕분에 이 지역에서 철수한 것 같아.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우리가 여우를 잡고 난 뒤의 일 일 걸세. 밖에 있는 저격수가 우리의 일을 그들에게 보고 하겠지만 우리는 여기서 잡는 게 아니라 사막으로 끌고 나가 잡을 테니 말야.”
“언제 나타나는지 확실하게 알고 계시는 것 같군요,”
“물론이지 10년 전에 난 그 놈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네. 그리고 내일이 딱 10년이 되는 날이지. 아마 적들은 정확하게 언제 나타나는지는 모를 거야.”
죠의 말에 헬릭은 10년 전에는 어땠는지 물으려다 그만 두었다. 실패한 이야기를 꺼내 그의 기분을 가라앉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제가 무슨 일을 도와드리면 됩니까?”
“원래는 요셉이 하기로 했었는데 이 친구가 좀 불안해서 말이지. 자네가 미끼가 되어줬으면 좋겠네.”

Spider and Fly
다음날 헬릭은 탐지 장치의 영역 내에서 뒤 쪽 트레일러에서 꺼낸 스카이 바이크를 시험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Fly”라고 적혀 있었는데 소형이지만 매우 빠른 속도를 내는 물건이었다. 헬릭이 전차 주위를 돌아 테스트를 해 본 뒤 전차 뒤에 세워 놓은 인간형 로봇에게서 장비 케이스를 받아 바이크에 싣고 로봇들을 주변에 배치했다. 그 사이 전차 안에 있던 죠가 밖으로 나와 헬릭에게 말했다.
“어떤가? 그저 도망치기만 하면 되니까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을 거네.”
“네.”
하지만 그것이 죠의 말대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헬릭은 알고 있었다. 정체를 모르는 존재를 잡기 위한 미끼가 되는 일이 인간들의 계획대로 쉬울 리 없었다.
“자 다시 한 번 체크해보세. 우리는 여기서 대기해 있다가 놈이 모습을 드러내 새로 태어날 때 까지 숨어 있는 걸세 그 뒤에 놈이 힘이 약해져 나타나면 나와 요셉은 마르스의 묘지 밖으로 이동하고 자네는 놈을 유인해 우리가 위치를 잡을 때 까지 도망치다가 우리 쪽으로 몰고 오는 걸세.”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럼 부탁하네.”
죠가 이렇게 말하고 트레일러로 사라지자 헬릭은 한 쪽에 바이크를 세워 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차 앞에 펼쳐진 오아시스와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자신을 노리고 있는 저격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넓은 영역을 탐지할 수 있는 탐지 센서 안에 있었고 또 얼마 후면 괴상한 생물을 뒤에 달고 도망쳐야 했기 때문에 그 생각은 오래 가지 않았다.

헬릭이 다시 전차 안으로 들어가 어깨의 상처를 살펴보고 있는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요셉이 죠를 불러 같이 확인하더니 이내 전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이 나타난 것 같네.”
죠의 말에 헬릭은 조종석 쪽으로 건너가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오아시스 주변에 설치해 둔 감시 카메라에 의해 오아시스의 상황들이 나오고 있었는데 한 카메라에서 누런 동물의 형상이 발견 되었다. 마침 죠가 그 스크린을 확대하자 그 형상은 더욱 뚜렷해졌는데 확실히 여우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모래여우로 짐작되는 그것의 크기는 죠 의 말대로 집채만 했는데 머리 길이만 해도 사람 키 정도는 될 것 같았다. 놈은 오아시스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그 발이 닿는 부분은 몸을 둘러싸고 있는 모래가 흘러내린 건지 아니면 모래로 변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내 누렇게 변해 버렸다.

“자 이제 놈이 오아시스 안으로 들어가면 자네는 놈이 나오는 것을 기다려 유인하게 우리는 지정된 위치에 가 있겠네.”
죠의 말에 헬릭이 일어나 전차 밖으로 나와 트레일러에 실어 놓은 바이크를 타고 오아시스 쪽으로 이동했고 전차는 오아시스 밖으로 벗어나기 위해 헬릭과는 반대 방향으로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오아시스로 이동하며 헬릭은 주위에 배치해 놓은 로봇들을 통해 모래여우를 관찰하고 있었는데 잠시 후 죠의 말대로 모래여우가 오아시스의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물이 닿은 부분의 모래가 무너져 내리고 모래여우가 물에 녹은 듯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을 때 즈음 헬릭은 오아시스에 도착했다.
바이크에 올라탄 채 라이플의 스코프와 로봇들의 센서로 다시 나타날 여우를 살펴보고 있는데 저격 로봇 쪽의 신호가 사라졌다. 이런 때 적의 저격수가 나타난 것은 아닌가 하여 저격 로봇 쪽을 확인하는데 그 곳에 모래 여우가 서 서 헬릭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발 밑에는 모래가 쌓여 있었다. 크기는 일반 여우 크기로 작아져 있었지만 형태는 이전과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헬릭은 녀석이 쫒아 올 수 있도록 머리에 총을 쏘고는 급히 바이크를 돌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래여우는 총을 맞은 부분이 흩어지는 것 같더니 이내 헬릭을 쫒아오기 시작했다.

“놈이 쫒아오고 있습니다. 준비가 되면 알려 주십시오.”
“조금만 기다리게 바로 연락해 주겠네.”
헬릭이 다급한 목소리로 죠에게 연락하고 나서 나무 사이를 피해 달아나는 데 여우는 가지와 가지 사이를 뛰어 넘으며 헬릭과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헬릭이 급히 방향을 돌려 나무사이를 지나치는 순간 다시 총소리가 울렸고 여우가 멈추어 섰다. 적의 저격수가 여우를 발견하고 총을 쏜 모양이었다. 헬릭은 멈추어 서서 돌려 맸던 라이플을 집어 들고 다시 모래여우를 향해 총을 쏘았다. 적 저격수의 공격으로 멈추어 주위를 살피던 모래여우는 헬릭의 공격에 다시 고개를 돌려 헬릭을 바라보았고 주위를 끈 것을 확인한 헬릭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총소리로 저격수의 위치를 대강 파악했기 때문에 방향을 돌려 오아시스 쪽으로 움직였다. 오아시스에 거의 다다랐을 때 죠에게서 연락이 도착했다.
“준비 다 됐네. 여우 위치는 바이크에 달린 센서로 파악하고 있으니까 내가 발사라고 말하면 바로 방향을 바꾸라고.”
죠의 말을 듣고 헬릭이 죠와 요셉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다시 바꾸었는데 그 순간 “발사!” 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헬릭의 머리 위로 굵은 빛줄기가 지나가는 것 같더니 여우의 몸이 물을 맞아 녹아내렸다. 나무가 빽빽한 곳이라 레이저로 탄도를 확보한 뒤 탄을 발사한 것이었다. 그 때문에 헬릭의 이동경로 앞으로 잘린 나뭇가지나 부스러기 들이 쏟아져 내렸다. 다행이 그것들을 피하고 여우를 확인했는데 물을 맞고 멈칫한 것 같던 여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발사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제 때 방향을 바꿔 나뭇가지가 떨어져 내려오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두 번째 탄을 맞은 여우는 하체 부분을 이루던 모래가 많이 흘러내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헬릭을 쫒아오고 있었다.
이제 나무들 사이로 사막의 모습과 포탑을 겨누고 있는 전차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잠시 후 죠가 세 번째 탄이 발사됨을 알렸지만 이미 사막으로 나온 터라 헬릭은 방향을 바꾸지 않고 곧장 전차 쪽으로 달려갔다. 헬릭의 머리 다시 한 번 빛줄기가 지나갔고 전차에 도착해 여우를 바라보았을 때에는 여우도 막 사막으로 나오려는 참이었다. 모래로 이루어진 몸의 군데군데가 물에 젖어 흘러내린 채 헬릭과 죠를 멀리서 노려보던 여우는 사막에 발을 딛자마자 서서히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요셉 이제 레이저는 필요 없어. 머리를 노려…”
죠가 큰소리로 이렇게 외침과 동시에 네 번째와 다섯 번째 탄이 날아갔다. 그 두 발의 탄은 이제 머리가 아이크기 정도로 커진 여우의 눈과 눈 사이에 정확하게 맞았고 이내 여우의 머리가 물과 함께 흘러 내렸다. 머리의 두발이 치명타였던지 여우의 움직임이 멈추었지만 탄은 멈추지 않았다. 뒤이어 세발의 탄이 더 날아갔고 여우의 머리는 이제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생포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할 수 없네. 나도 녀석이 사막으로 나오면 몸집이 거대해 진다는 것은 몰랐으니까.”
죠의 말과 함께 머리가 없어진 여우가 사막 위로 쓰러졌다. 죠는 그것을 확인하고는 전차를 움직였고 헬릭 역시 바이크를 트레일러에 싣고 전차에 올라탔다. 전차가 여우 근처로 다가가자 요셉이 가장 뒤에 달려있던 연료탱크로 옮겨가더니 여우에게 물을 쏘아댔다. 여우가 움직이지 않음을 확인한 죠는 그제야 큰 소리로 웃으며 소리쳤다.
“하하하 드디어 잡았군. 이제 저 놈의 심장을 꺼내볼까?”
죠가 이렇게 말하고 전차를 나가 여우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물에 젖은 모래를 흩어내고 여우의 목 아래를 칼로 길게 찢고는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죠의 손에 들린 것은 생물의 심장이 아닌 주먹 만 한 크기의 보석 같은 것이었다. 피 때문인지 붉게 빛나는 그 것을 손에 쥔 죠가 머리 위로 쳐들고 헬릭과 요셉을 향해 소리쳤다.
“20년이라구. 이 놈을 잡는데 20년이 걸렸어.”
그의 웃는 얼굴이 일그러진 것은 바로 그 때였다. 그의 가슴 밑에서 피가 튀더니 뒤이어 총 소리가 들려왔다. 죠가 쓰러지자 헬릭이 말릴 틈도 없이 요셉이 달려갔다.
“돌아와!”
헬릭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요셉이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아직 정신을 잃지 않는 죠가 엎드린 요셉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우를 상대하느라 저격수를 잊고 있었던 것이 잘못이었다. 전차 안에 남아 있던 헬릭이 방어 장치를 확인 했지만 레이저를 쓰느라 높은 출력을 소비해서 인지 작동 반경이 작아져 있었다.
‘얼른 저격수를 처리하고 죠를 치료해야 하는데.’
하지만 저격수는 헬릭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다시 죠를 공격했다. 다행스럽게 죠가 의족을 하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두 번째 탄은 죠의 의족을 맞추었다. 헬릭은 적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자신의 센서를 다시 확인해 보았지만 역시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 때 인간형 로봇의 존재가 생각났다.
‘길리슈트로 몸을 감싸고 인간인 것처럼 움직여 놈을 유인한다면…..’
적이 저격 로봇의 존재를 알고 있다면 소용없는 일이었지만 일단은 이 방법 밖에 없을 것 같았다. 헬릭은 저격 로봇을 나무 위에서 내려오게 해 전차 쪽으로 이동시키며 로봇의 센서를 통해 주변을 살폈다.
“제발 물어라.”
그 때 였다. 적이 로봇을 발견했는지 로봇이 균형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헬릭은 로봇을 움직여 나무 뒤에 숨겨 놓고 적의 위치를 파악했다. 로봇의 위치가 오아시스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적은 분명히 그 중간에서 사막과 로봇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헬릭은 로봇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주변의 나뭇가지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한 순간 나뭇가지 너머로 일렁이는 것을 확인하고는 로봇이 들고 있는 라이플의 방아쇠를 당겼다. 맞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히 그 공격이 있고 난 뒤 적에게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헬릭은 얼른 해치를 열고 나와 정신을 잃은 죠를 끌어 적에게 보이지 않을 전차 바닥으로 밀어 넣고는 바이크를 타고 오아시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헬릭이 거의 도착했을 때 적이 로봇을 발견했는지 로봇으로부터의 신호가 사라졌다. 그것을 신호로 헬릭은 바이크에서 내려 나무 위로 올라갔다. 로봇의 위치를 짐작해 볼 때 적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가지 뒤에 숨어 스코프로 주변을 살피며 수상한 곳을 찾았다. 죠를 살리기 위해서는 되도록 빨리 적을 처리해야 했다. 헬릭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로봇이 쓰러진 곳 뒤 쪽의 수풀을 향해 총을 쏜 순간 그 뒤에서 총알이 날아왔다. 하지만 적도 헬릭의 정확한 위치는 파악하지 못한 듯 꽤 떨어진 곳을 겨냥하고 있었다. 수풀 뒤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헬릭도 적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언제 적이 위치를 바꾸었는지 반대 방향에서 총알이 날아와 헬릭의 왼쪽 어깨 위를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헬릭은 자세를 낮추고 방향을 바꾸어 총알이 날아온 방향으로 위협사격을 했다. 그 것이 꽤 가까운 위치였는지 급하게 적이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헬릭은 방아쇠를 당겼다.
적이 쓰러진 것을 확인하고 나무를 내려온 헬릭은 천천히 다가갔다. 움직이지 않는 적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더니 아직 죽지 않았는지 길리슈트 위로 머리를 내미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런데 적의 금발이 길리슈트 너머로 나타나는 순간 헬릭의 등골이 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짐작이 틀리기를 빌었다. 하지만 신은 누군가를 죽이며 살아가는 인간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또 자신과 자신의 숭배자를 농락한 자를 용서하지 않았다.
헬릭이 천천히 다가 설 때 마다 그의 짐작은 뚜렷해 졌고, 결국 그가 적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에는 그를 무릎 꿇게 만들었다.
“왜 네가 여기 있는거야! 왜! 정신 차려!”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은 앤이었다. 가슴을 관통한 총상으로 피를 흘리며 그녀는 헬릭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당신… 이었어?”
“왜 네가 여기 있는거야. 그 때 돌아간다고 했잖아.”
헬릭의 목소리가 나무사이로 퍼져나갔다.
“걱정하지마. 당신을 원망하지는 않을 테니까. 돌아간다는 말은 거짓말이었어. 내 남동생이 반란군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거든.”
“남동생?”
“그 아이도 여기서… 죽었어. 그 날 아침 헬렌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기도하다……”
헬릭은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지금껏 많은 죽음을 겪었지만 이번처럼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적은 없었다. 헬릭은 남동생을 죽인 것도 바로 헬릭이라는 것을 그녀가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마지막 거친 숨을 내뱉으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헬릭의 손에 쥐어 주며 말했다.
“내가 준 초콜릿… 가지고 있어?”
앤의 말에 헬릭은 주머니를 뒤져 초콜릿 조각을 꺼냈다. 그리고 작게 잘라 그녀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헬릭에게 말했다.
“달콤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내 고개를 떨어뜨렸다. 헬릭은 그녀가 손에 쥐어준 것을 볼 생각도 못하고 멍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한 기분으로 그녀가 손에 쥐어진 것을 확인했다. 그것은 그녀의 가족사진이었다. 그녀와 남동생 그리고 아프다는 여동생이 웃고 있는 사진 뒷면에는 병원 주소가 적혀있었다. 헬릭은 일어서 그녀를 남겨두고 돌아섰다. 헬릭이 전차로 돌아왔을 때는 죠가 전차 아래서 숨을 몰아쉬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적은 처리했나?”
“……”
죠의 물음에 헬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를 전차로 옮기려는데 그가 말했다.
“그만 둬. 이미 틀렸어. 그리고 저 놈을 잡았으니 살 이유도 없고.”
죠는 이렇게 말하더니 손에 쥐고 있던 모래여우의 심장을 헬릭에게 건넸다.
“아무래도 자네가 이것의 주인인 것 같아. 이제 부모님을 만날 수 있겠군.”
“살아남아서 그 실험이 어떤 것인지 밝히지 않을 겁니까?”
헬릭이 이렇게 말하자 죠가 눈을 감으며 말했다.
“걱정마. 이제 그것은 진짜 전설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는 다시 눈을 뜨지 않았다. 헬릭은 일어서서 그가 손에 쥐어준 심장을 내려 보았다. 잠시 그렇게 서 있던 그는 본부를 향해 메시지를 보냈다.
“여우 심장을 원한다면 유진 레우야 대위를 이곳으로 보내기 바람.”

여우심장
헬릭은 얼마 뒤 도착한 수송선에 올라타 대위를 만나서 그에게 여우 심장을 건네주었다. 대위는 뭔가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더니 그것을 받아 들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굉장한 돈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의 가치가 어떻게 되었든….”
헬릭이 이렇게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헬릭은 수송선의 좌석에 앉아 유진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죠에게 들었던 긴 이야기를 다 전해준 헬릭은 눈을 감고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언젠가는 당신 손에 들고 있는 것도 모래로 변할지도 모르지요. 그 전에 여기서 떠나야 겠습니다. 돈이라도 챙겨서 말이죠.”
헬릭은 이렇게 말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유진 역시 그 붉은 색 심장을 손에 쥔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두 달이 지나 헬릭은 반정부군이 승리해 정권이 교체 될 것이라는 뉴스를 보며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그의 손에는 꽃 한 다발과 돈이 가득 든 가방, 그리고 앤이 남긴 초콜릿 조각이 들려 있었다. 형제들의 죽음을 돈으로 갚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그는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한 남매 전부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되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신이 허락해 준다면……. 그는 뉴스가 바뀌자 일어서 안주머니에서 앤이 남긴 사진을 한 번 확인하고는 봉투와 꽃을 챙겨들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어갔다.
?-
막 써내려 마치고 나니 이걸 손보는 데 얼마나 걸릴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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