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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노 히데시의 걸작 호러 단편 시리즈

달부장 2005. 8. 5.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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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노 히데시의 걸작 호러 단편 시리즈

히노 히데시의 걸작 호러 단편 시리즈가 드디어 도착했다. 1권인 “붉은 뱀”을 지방에 수배 하느라 배송이 늦어진다는 메일을 받고 꽤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혹여 절판은 되지 않았을까 걱정 했지만 다행 스럽게도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죠로쿠의 기묘한 병”이라는 2권을 마저 사지 못한게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어쨌든 기다렸던 책이 도착했다는 설레임으로 그 자리에서 두 권을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1권인 “붉은 뱀”은 한 소년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미로에 갖힌 자의 불안감과 끝나지 않는 악몽에 대한 공포를 그려내고 있다.

소년은 고옥(古屋)에 살고 있다. 오래된 고목들에 의해 둘러싸인 이 집은 거대해서 그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크기가 궁금했던 소년이 주변을 돌아 그 크기를 알아보려고 했지만 결국 숲을 헤매다 난생 처음 보는 집의 다른 부분에 도착하고 말았고 그 곳을 헤매다 결국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고 말았다. 어쩌면 집 전체가 미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소년은 그 곳을 빠져 나가고 싶지만 숲 속을 헤매다 결국은 같은 자리로 돌아오고 만다. 소년이 집을 빠져나가고 싶은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가족들이다. 얼굴에 커다란 혹에서 매일 고름을 뽑아야 하는 할아버지, 방 안에 둥지를 만들고 그 곳에서 생활하는 할머니, 벌레와 닭을 키워 계란을 얻는 아버지, 할아버지의 혹을 마사지하고 발로 밟아 고름을 빼주는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가 키우는 벌레를 몰래 가져와 노는 누나가 바로 그 들이다. 그들의 기괴함은 소년에게 거대한 미궁 같은 집 보다 더 큰 불안과 공포를 가져다 준다. 그러던 어느날 소년은 잠을 자다 유체이탈을 경험하고 할아버지가 가지 말라고 말한 거울 너머로 넘어가게 된다. 그 너머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방에 귀신들이 살고 있으며 그 끝에는 지옥의 방이 있고 그 지옥의 방을 보게 되면 가족에게 끔찍한 일이 생긴다고 할아버지는 이야기 했었지만 소년은 어찌된 일인지 공포를 느끼지 못한 채 지옥의 방으로 가는 문 앞에 가게 되고 그 순간 잠이 깬다. 그리고 얼마 후 붉은 뱀이 나타난다.

3권인 “지옥도”는 어느 무명 화공이 그린 지옥의 풍경에 대한 이야기다. 그 화공이 그린 지옥의 풍경과 그의 가족과 출생에 대한 이야기가 각 에피소드를 이루는데 그 저변에는 인간의 광기와 폭력 그리고 원폭에 대한 공포가 스며들어 있다. 길로틴 형장과 붉은 피와 쓰레기가 가득한 지옥천, 목 잘린 사체들의 화장터와 묘지에 대한 묘사들은 화공의 가족과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다 결국 종말 지옥도라는 마지막으로 이어지는데 마지막에 화공이 독자들을 향해 던지는 한마디는 인간이 가진 근원의 공포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지는 그림들과 괴기스러운 분위기가 전체를 압도하는 그의 작품들은 내가 지금껏 본 공포 만화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끔찍한 그림보다는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머릿속에 오래 남았고 특히 “지옥도”는 광기에 가득찬 주인공의 눈에 비친 지옥과 같은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무겁고 어두운 공포를 내게 안겨주었다. 만화책을 다 읽고 나서 또 기억에 남는 것은 “지옥도”의 마지막에 나오는 후기로 작가 히노 히데시와 실 생활자 호시노 야스시에 대한 꽤 공감가는 이야기였다. 공포 만화를 그리는 것은 평범한 현실의 인간 호시노 야스시가 정신적 밸런스를 무너뜨려 입에 담기도 힘든 “찐득한”것을 그 속에 채우고 다시 토해내 그리는 악순환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런 악순환에 지치고, 그 즈음 주변에 차례로 일어난 어떠한 사건들을 계기로 하여 “지옥도”를 마지막으로 만화를 그리는 일을 그만 두려 했는데 결국 공포 만화를 계속 그리게 되었고 지금은 공포만화가인 히노 히데시가 진정한 나인지 평범한 인간 호시노 야스시가 진정한 나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는 마지막은 묘한 느낌을 준다. 어쩌면 호시노 야스시에게는 히노 히데시라는 또 다른 그의 모습이 공포일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나 역시 “죽음”과 “살인” 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해 내는 나의 또 다른 모습에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뭔가 다른 이야기를 떠올리려고 노력해 보지만 그게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만화책을 다 읽고 나니 그가 감독했다는 영화에 대해서도 궁금함이 생기지만 그건 포기해야 할 것 같다. 그의 만화로 비추어 보건데 그가 히노 히데시라는 이름으로 그의 내부에 쌓아 두었던 끈적한 것들을 영화에 쏟아냈다면 그 끔찍함이 나를 오랫동안 괴롭힐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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