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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습작/FIXUP

회귀

달부장 2005. 2. 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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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뭐랄까 이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일은 마치 비를 흠뻑 맞아 뼛속까지 추위가 스며든 채로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돌아갈 때의 기분과 비슷하다고 나 할까? 항상 경험하는 일이지만 전쟁 중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용병들에게는 안락한 좌석 따위는 제공되지 않았다. 의자라도 있으면 그나마 나았다. 온통 차가운 금속의 컨테이너 안에서 가운데 하나 켜져 있는 불빛에 의지해 벽에 기대어 서있거나 쭈그려 앉아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잠시 서서 '타르/니코친 프리'라고 쓰여져 있는 상자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는 불을 붙였다. 

'후....'

불빛에 담배연기가 흩어지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몽롱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고 하면 좋을까. 컨테이너 안의 악취를 잊기 위해 피운 담배지만 지금은 연기가 내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컨테이너는 가축운반용을 개조한 것 같았다. 켜지는 전등은 하나에 바닥에는 모래가 얇게 깔려 있었고 10 제곱미터 정도 넓이의 직사각형 공간에 약 15명의 인원이 타고 있었다. 창문도 하나 나있지 않은데다가 공기 청정기도 너무 오래 되었는지 오래된 선풍기의 풀려버린 안전 망에서 나는 것 같은 진동음이 귀를 괴롭히고 있었고 저쪽 입구 옆 구석에 누워 있는 아스테이아 인은 부상을 당한 자리가 썩고 있는지 그 쪽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나에게까지 그 냄새가 나고 있었다. 나는 담배 한 대를 필터 바로 밑까지 빨고는 벽에 비벼 끈 뒤에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담배도 이제 4 가치 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 지독한 악취 속에서 2일이나 더 여행할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난 자리에 앉자마자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자는 일밖에는 뭐 달리 할 일 이 생각나지 않았다. 프로낭의 그 누런 진흙구덩이 참호 속에서는 그토록 자고 싶어했었는데... 이 차가운 컨테이너 바닥은 왠지 잠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난 눈을 계속 감고 주위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 채 그렇게 누워 있었다. 간혹 내 옆에 앉아있는 로스틴인의 괴기스러운 숨소리와 함께 그가 옆의 다른 동료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고 부상당한 아스테이아인의 신음소리도 가끔 들렸다. 그렇게 한참을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난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나 잤는지 얼굴이 부어 불쾌스런 느낌에 시원한 물에 세수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일어났을 때는 컨테이너 운반선이 다른 운반선과 도킹을 시도하는지 상당히 시끄러운 기계음이 귀를 괴롭히고 있었다. 

'뭐지...바로 시크릿 가든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나?'

호기심에 방금 전의 불쾌한 느낌이 가시고 머릿속이 활발하게 뭔가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불쑥 튀어나오는 위험한 상상과 즐거움이 지나가고 도킹을 마친 다른 운반선의 엔진소리가 들리자 나는 그만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가 금방 그만두었다. 괜한 웃음을 흘렸다가 이 컨테이너 안에 있는 우르크스 인들이 오해를 했다가는 싸움이 생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저 오만한 걸음걸이의 우르크스 인들은 남다른 종족 우월주의를 가지고 있어서 자신들 앞에서 웃는다거나 크게 소리치는 일을 굉장히 싫어했다. 그 때문에 우르크스 인들의 지구 출입은 금지되었고 그 일은 더욱더 우르크스 인들을 자극했다. 내 바로 앞에 앉아있던 우르크스 인이 내가 혼자 웃는 것을 보았는지 그 푸르스름한 얼굴에 인상을 쓰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저 구겨진 인상이 더 구겨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정말 비웃어 보고 싶었지만 그의 손에 쥐어진 소닉 나이프가 '시----잉'하는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보고는 못 본 채 눈을 돌려 버렸다.

내가 눈을 돌려버리자 소닉 나이프의 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사라져 버렸다. 분명 저 우르크스 인도 많이 지쳤겠지... 분명 그럴 것이다. 계약이 끝나 돌아가는 용병에게는 오랜 전쟁에서의 피로가 의욕을 상실하게 만드니까.

잠깐 동안이었지만 둘 사이의 긴장이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할 즈음 입구 쪽의 문이 열렸고 처컹 처컹하는 소리가 울렸다. 문 밖의 빛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눈이 부셔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상당히 기묘한 모습의 외계인이었다. 인간과 비슷한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어 보이지만 머리가 인간에 비해 1.5배정도 컸고 키는 약 160센티미터 정도 였다. 아무래도 금속밑창의 신발 같은 것을 신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이 들어왔다. 같은 종족인 것 같았는데 그 사람의 발자국 소리는 앞의 사람처럼 금속성의 소리가 나지 않았고 키가 더 커서 약 180 센티미터는 되는 것 같았다. 두 명이 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문은 닫혔고 두 명은 입구에서 걸어 나와 컨테이너 양쪽 벽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멀리 떨어져 앉았다. 키가 큰 쪽이 앉은자리는 내 옆이었고 작은 쪽의 자리는 내 맞은 편의 컨테이너 벽이었다. 나는 엉덩이를 들어 자리를 조금 옆으로 옮겨 앉았다.

눈이 다시 실내에 익숙해져 제대로 보이기 시작할 즈음 나는 고개를 돌려 내 옆에 앉은 외계인을 바라보았다. 

'어... 처음 보는 종족인데...'

그랬다. 이곳 저곳 상당히 많은 전쟁터를 돌아다니며 용병들을 보아왔기 때문에 모르는 종족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곤충의 겹눈처럼 오밀조밀 박혀있는 수백의 작은 눈들이 모여 하나 얼굴에 박혀있고 코는 없었으며 입은 세로로 코 부분까지 열려 있었다. 거의 검은 색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어두운 피부색은 그를 어둠과 너무 잘 어울리게 만들어서 마치 계속 이 안에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맞은 편을 바라보던 그는 내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눈치챘는지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입을 열었다.

'당신은 무슨 종족이요?'

신기하게도 지구 어를 사용해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난 잠시 놀랐다. 사실은 그 귀에 익은 언어가 세로로 뚫린 입에서 새어나오는 모양이 너무도 기묘해서 잠시 말을 잊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잠시 말을 하지 않고 있자 상대방은 다른 몇 개의 언어로 말을 걸었다. 그가 그렇게 열심히 나에게 말을 거는 모양이 조금은 나를 감동 시켜서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Earthian'

'사실 인간은 처음 봅니다.'

꽤나 공손한 그의 말투에 비해 내 말투가 너무 딱딱해서 미안한 생각까지 들었다. 인간을 처음 본다니.. 그렇다면 지구어는 어디서 배운거지... 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당신 같은 종족은 처음 보는데?'

'......저도 잘 모릅니다.'

그의 말에 나는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뭐야 자기종족이 무슨 종족인지 모른다니...이런 말이 어디 있나...그가 나의 의아해 하는 표정을 이해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말을 잘못했군요. 종족의 이름은 하란 족입니다.'

하란 ... 역시나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그런 종족이 있었나.

'인간 용병이라... 적에게는 상당히 치명적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군요. 호전적이고 지능적이며 본능적인 움직임이 위협적이라고 들었습니다. 은하 최고의 무기는 인간이라는 말을 누군가 하더군요'

'은하 최고의 무기라...'

사실이긴 하지만 다른 종족에게 그런 말을 듣자니 기분이 조금은 이상했다. 용병은 무기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말인가. 그 헤아릴 수 없이 빠른 인간의 번식력만큼이나 인간의 공격적인 성향은 우주에서 유명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얼굴에 내 이런 표정이 드러났는지 그가 사과를 했다.

'이거 실례한 것 같군요'

'아닙니다. 그보다 하란이란 종족은 처음 들어보는데...'

나의 질문에 그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외눈에 얼굴의 1/4를 차지하는 눈의 윗 부분이 찌그러지는 것을 보아 인상을 쓰는 것 같아 보였지만 이어진 그의 말투에는 슬픔 같은 것이 드러나 있었다.

'...하...종족의 이름만 알뿐 고향별이 어딘 지를 모릅니다.'

고향별이 어딘지 모른다. 그 때 맞은 편의 남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 키작은 하란족은 나와 내 옆의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었는지 처음 듣는 언어로 소리쳤다. 무슨 말이었을까. 그의 소리를 듣고는 내 옆의 하란족인이 나에게 말했다.

'종족의 일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는군요'

'그렇다면 그만 두시죠...'

꽤나 지루한 귀향 길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것 같아 기대했던 나는 잠시 실망했지만 그는 맞은편의 사람 말을 듣지 않을 모양이었다.

'맞은 편의 저자 역시 자신의 고향을 모릅니다. 거기다 저 자는 어릴 때부터 애완용으로 키워졌었다고 하더군요. 불행한일이지만 그렇게 자란데다 도망쳐 나와 시작한 일이 해적 질이어서 그 때 당한 사고로 몸 아래는 기계로 된 쇳덩어리랍니다...그래서 그런지 남에게 익숙하지가 못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맞은 편의 저 사람이 들으면 상당히 기분 나빠하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맞은편은 내 옆의 사람을 말리는 것을 포기했는지 아무 말 없이 누워있었다...곁눈으로 된 눈은 눈꺼풀이 없어서 감은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잠이라도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 어디론가 팔려가거나 다른 종족의 손에 의해 키워지곤 합니다. 고향도 모르고 자신의 어머니도 모른채 자신과는 다른 종족의 틈에 끼어서 살아가게 되지요'

그의 말을 듣고 난 매우 슬픈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고향도 부모도 모른채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그렇게 살아가는 종족이라니... 마치 저주에 걸려 있기라도 한 것 같아 보였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저 맞은편처럼 애완동물로 키워졌었나요'

'아닙니다. 나는 전쟁터에서 자랐습니다. 야냔라스라고 하는 오랜 내전 국에서 어릴 때부터 전쟁용으로 키워 졌었죠. 그리고 어느정도 자란 뒤에는 용병으로 일했고... 이번에도 막 프로낭에서 일을 마치고 저 맞은 편의 남자를 만나 여행을 하는 중입니다.'

'프로낭...! 이 자가 내 적이었을 수도 있겠군'

그럴 수도 있었다. 프로낭에서 왕국 측의 용병이라고는 국지 정찰 외인부대가 고작이었고 그 외인부대의 용병이라면 자기가 다 알고 있었으니 이 하란 인은 분명 반란군 쪽 일 것이다. 적과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하지만 어차피 끝난 일이니 그런 것을 끄집어내어 복잡해질 이유는 없었다. 나는 이야기를 피하려고 여행에 대해 다시 물었다.

'여행이라면....무슨 여행을...'

'우리 고향을 찾아가려는 거지요. 저 맞은 편의 친구는 이제 거의 목숨이 다했습니다. 저렇게 자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천천히 죽음을 준비하는 거지요. 저렇게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지다가 죽게 된다고 하더군요'

'고향을 찾아 나선다. 한번도 본적 없는 곳을 찾아 나선다니 쉬운 일은 아니겠군요.'

내 말에 그의 세로로 열린 입술 양쪽에 큰 주름이 생겼다...웃는 것인지 찡그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는데 그의 다음 말을 듣고 웃고있는 것이라 알아챘다.

'사실은 아주 쉬운 일이지만... 난 살아있는 채로 내 고향을 보고 싶어서요'

살아 있는 채로 보고 싶다니 무슨 말이지. 나는 그의 수수께끼 같은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잠시 아무 말 없이 침묵이 흐르는 동안 맞은 편의 키 작은 하란 인의 몸에서 희미하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내 옆의 하란 인은 맞은 편에서 빛이 일기 시작하자 갑자기 벌떡 일어서 그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누워서 검은 몸에서 푸른빛을 내고 있는 남자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지만 그는 아무 반응이 없었고 그 푸른빛만 점점 강해질 뿐이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 그 푸른빛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강렬하게 컨테이너 안에서 폭발하듯 강해졌다 사그라들었다. 갑작스런 강렬한 빛에 컨테이너 안의 용병들이 긴장했고 아까 들렸던 소닉 나이프의 시잉 하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나는 강한 빛 때문에 잠시 아무것도 보지 못하다가 빛이 사라지자 눈을 비비며 맞은 편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키 큰 하란인 만이 그 키작은 하란인의 기계로 된 하체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뭐야. 이 빛은?'

우르크스인의 목소리에 긴장이 실려있었다. 하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그 키 큰 하란인의 목소리는 매우 가라앉아 있었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고향으로 돌아간 것뿐입니다.'

키 큰 하란인의 말...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듣고 우르크스인이며 나며 그 외의 컨테이너 안의 다른 외계인들의 얼굴이 알 수 없다는 듯 변했다. 하지만 키 큰 하란 인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없이 다시 내 옆의 자리로 돌아와 앉았고 우르크스인 역시 더 이상은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키 큰 하란 인은 내 옆에 앉자 마자 다시 그 입 양쪽에 큰 주름을 만들며 나에게 이야기했다.

'죽은 겁니다. 돌아간 거죠. 고향으로.....'

그의 말에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질문하려 했으나 내가 질문하기 전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의 두개골은 이중이라고 하더군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갑자기 두개골이야기라니... 그는 자신의 머리를 그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그러자 그의 머리에서 통통하는 안이 비어있을 때 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안에 진짜 두뇌가 들어있고 그것을 다른 두개골이 싸고 있답니다. 이 두 번째의 두개골은 우리를 고향으로 데려가기 위한 목적이지요. 평소에는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지만 우리의 신체작용이 멈추면...그 때 이 두 번째 두개골이 작용하기 시작한답니다. 빛을 내며 마치 시공간의 구멍을 열 듯 공간을 찌그려 뜨려 우리를 고향으로 데리고 갑니다. 물론 우리의 신체를 제외한 다른 이물질은 제외하고요 그래서 그 친구의 하체는 여기에 남아있는 거지요. 솔직히 말하면  사실 고향으로 데려간다는 생각들은 다 저의 추측입니다. 죽기 전에는 갈 수 없으니 그게 고향인지도 알 수 없지요. 하지만 전에 만났던 나이 많은 하란 인이 그러더군요 자신은 아마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그는 한쪽 두개골이 함몰되어 있었거든요.'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시공간을 이동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며 거기에 죽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라니... 그가 고향을 보기 위해 여행을 하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기하군요. 죽어야만 돌아간다니...'

그 때였다. 갑자기 컨테이너가 옆으로 기울어지며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와 충돌한 것 같았다. 

'뭐지...?'

난 놀라 일어섰고 컨테이너 안은 갑작스런 일에 시끄러워졌다. 그런 시끄러운 소음들 사이로 밖에서 총성이 들리자 다시 안은 시끄러워졌다. 다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무기를 꺼내 들었고 나 역시 여행 가방 안에서 대검을 꺼내들었다. 구식이지만 가장 치명적이었기에 난 여행 때마다 빼놓지 않고 이 대검을 가지고 다녔다. 컨테이너 안의 이런 긴장을 아는지 모르는지 컨테이너 입구의 문은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조용히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열린 문으로 우르크스 인 하나가 들어섰다. 

'안에 우르크스 인이 있는가?'

몇 개의 언어로 이렇게 말하자 맞은 편의 우르크스 인이 일어나 앞으로 나갔고 다른 몇 명의 용병들은 무슨 일인지 말하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두명의 우르크스 인은 아무 대답없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쪽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나는 그의 소닉 나이프가 울어대는 것을 보고 대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시크릿 가든으로 가는 길을 우르크스의 형제들이 접수했다.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경고다. 이제 시크릿 가든과 그 모든 통행로에 인간은 들어올수 없다.'

'젠장...'

이제 겨우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가려는 용병에게 이런 골치아픈 일이 생기다니 아무래도 우르크스가 지구로의 통행금지에 대해 보복하기위해 항로의 일부를 점령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시크릿 가든으로 갈수 있겠지?'

로스틴인의 말에 소닉 나이프를 들고 있던 우르크스인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인간은 안 된다. 여기서 나가 줘야겠어'

'죽어 달라는 소리로군'

우주 한복판에서 밖으로 나가라니...야만스러운 자식들. 할수 없었다. 어차피 처음 이 컨테이너 안에 들어왔을때부터 느꼈던 불안이 폭발한 것 뿐이니까. 나는 대검을 들고 나서며 말했다.

'좋아.'

내 대검을 보고는 우르크스인 역시 나이프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문을 열고 들어왔던 다른 우르크스인은 문에 그대로 서서 둘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먼저 공격을 시작한 것은 우르크스 인이었다. 그의 소닉 나이프가 가슴쪽으로 찔러 들어오는 것을 대검으로 가까스로 쳐냈다. 하지만 손에 통증이 올 정도로 떨림이 느껴졌다. 나는 대검을 뒤집어 잡고는 놈의 목을 향해 크게 베었다. 놈은 뒤로 몸을 눕혀 내 칼을 피하고 다시 내 배 쪽으로 나이프를 찔러 들어왔고 나는 그 찔러 들어오는 놈의 손목을 왼손으로 잡고 발로 녀석의 정강이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 찍었다. 그 공격이 제대로 먹혔는지 녀석의 한쪽 무릎에서 빠작 하는 소리가 나며 뼈가 드러났다. 녀석의 괴성이 컨테이너 안을 울렸고 나는 오른손의 대검으로 왼손에 잡혀 있는 녀석의 손목을 잘랐다.

잘린 손목에서 희어멀건한 피가 새어나오고 녀석이 앞으로 꼬꾸라지자 나는 녀석의 등을 다시 한번 찔러 녀석의 숨통을 끊어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다른 우르크스 인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하며 녀석이 칼을 들고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난 칼을 다시 뽑아 녀석의 공격을 막으려고 했으나 대검이 죽은 녀석의 뼈에 걸렸는지 빠지질 않았다. 맨손으로 라도 막으려는 순간 내 앞이 어두워지며 내 옆에 앉아 있던 키 큰 하란인이 막아섰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일기 시작했다. 뭐지... 왜 저 자는 나를 위해 칼을 막은거지... 그를 바라보며 난 이런 생각을 했다. 그가 몸을 돌려 나를 안고 쓰러진 순간... 그 때 그의 몸이 강하게 빛났고 나는 그 빛이 내몸에서 같이 발하는 것을 느꼈다.

아.....

그리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순간이 계속되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알수 없고 몸이 움직이지도 않으며 눈으로는 암흑과 수십의 다른 색깔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몸에서 이상한 느낌을 느끼며 분명 나는 그 우르크스 인의 다음 공격에 죽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난 눈을 떴다.

희미한 푸른 하늘이 보였고 내가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 봤을 때 주위에는 하란인의 시체가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다. 내 옆에는 방금전... 나와 함께 컨테이너 안에 타고 있던 하란인의 몸이 누워져 있었다. 그의 배에는 우르크스 인의 손목이 칼을 쥔 상태로 꽂혀 있었다.

'아직 죽지 않았군요...!'

그는 죽지 않았다. 희미하지만 그는 말을 하고 있었고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 보고 있었다.

'시체뿐이긴 하지만 이렇게 많은 하란인은 처음봅니다. 여기가 고향인가...'

나는 그의 옆에 앉아 그의 배에 박힌 칼을 뽑아내고 말했다.

'그래도 소원은 풀었군요... 아마 당신이 최초로 고향을 본 하란 인일 겁니다. 그보다 왜 나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겁니까?'

그의 입에 희미한 주름이 잡혔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자를 막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 섭니다. 우리처럼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힘든 ... 종..족..일 .. 수..록... 그... 마..음..을 ..아...니...'

점점 그의 목소리가 줄어 들었고 이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봐요...'

나는 죽은 하란인의 시체 옆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사실 이 하란인에 의해 살아 남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와 함께 그의 고향에 와버린 것이 잘된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후... 여기서 굶어 죽는 것이나 거기서 우르크스 녀석의 칼에 맞아 죽는 것이나 마찬 가지겠군...

이런 생각에 나도 모르게 한 숨이 새어나왔다. 그렇게 얼마 동안 그대로 앉아 주머니의 담배를 꺼내 피는 동안 죽어 있던 하란인의 시체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그의 상처는 사라지고 점점 작아지는 하란인의 시체가 어느 순간 아이처럼 작아 졌다. 그리고 마치 막 태어난 아기처럼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살아난 것이었다. ... 시체가 줄어들어 다시 태어나다니... 이건... 하란인의 시체 아니 그 아기는 그대로 기어 나에게 다가왔고 나는 녀석의 세로로 된 입가에 주름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웃는건가?'

난 담배를 끄고 녀석을 안아 올렸고 다시 한번 녀석과 함께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여행을 시작했다. 하란 인들에게 고향은 돌아갈 곳이 아니라 새로 시작하는 곳이었다. 죽음을 넘어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곳......그 희미하고 이상한 공간의 이동을 마치고 내가 눈을 떴을 때는 다행히 그곳이 우주 연합에 가입되어 있는 외각의 유목행성 가란 이어서 나는 시크릿 가든을 거치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을 떠날 때와 달리 돌아오는 내 손에는 대검 대신 하란 인의 아기가 안겨 있었고 그 녀석을 나는 애완용이 아닌 친구로 키울 생각이었다. 지구에서 녀석이 나를 구해준 예전의 하란인 만큼 자란다면 나는 그 하란인들의 고향에 대해서 이야기 해줄 것이고 또 그가 나를 구해준 일을 말해줄 것이다. 미약하지만 그렇게 밖에 내 생명의 은인에게 보답할 다른 방법은 없었다. 결국 그 작은 컨테이너 안에서의 만남은 나를 무사히 고향으로 데려다 주었고 이 비밀스런 경험은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채 그 비밀의 주인이 성장하길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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